[다시 대한민국] 한국외교, 차이팬을 친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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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일본 총리는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장기 불황으로 인한 우경화 바람을 등에 업고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일본은 향후 20년 안에 중국의 공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육·해·공군 전력을 일원화하는 ‘통합방위전략’을 여름 이전에 완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비하는 차원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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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동중국해 지역의 군사력 강화로 맞대응하는 분위기다. 류츠구이(劉賜貴) 중국 국가해양국장은 7일 “올해 댜오위다오 해역과 남중국해에서 일본·필리핀·베트남 등의 침략 활동을 저지할 것”이라며 “복잡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이 초래되더라도 해양주권을 단호히 수호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지켜온 아시아의 선두 자리를 중국에 내준 데 대한 좌절감이 있는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치닫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도 군사대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자칫 아시아 맹주(孟主) 자리를 놓고 벌이는 중·일 경쟁이 21세기판 청일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일 갈등의 파고가 어느 때보다 높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대륙 국가인 중국, 해양 국가인 일본 사이에 놓인 한국은 지정학적인 조건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일(CHIPAN) 모두와 친구가 되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싸움은 말리고 우호 관계는 북돋우는’ 중재자와 촉매 역할, 중·일 두 나라와의 관계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이 지난해 세계 8위 무역국으로 자리 잡는 데 중국과 일본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대외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1위가 중국(24.5%)이었고, 일본(7.1%)은 미국(10.7%)에 이어 3위였다.

 무역수지 외에 유통·관광 분야에서도 중국과 일본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의 복판인 명동에 나가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 국산 화장품 매장에 들어온 손님 7명 중 3명이 중국 관광객이었다. 판매 아르바이트 겸 통역은 중국어·일어·한국어·영어 구사가 가능한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생인 중국인 멍뎨(孟蝶·27·여)가 맡았다. 일행은 현장에서 화장품 52만원어치를 사 갔다.

 이 매장 고은혜 매니저는 “3~4년 전만 해도 일본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1~2년 전부터 중국 고객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과 일본인이었다. 제주도에선 지난해 1~11월 외국인과 관련한 관광 수입의 87.5%를 중국인과 일본인이 차지했다. 최근 4년간 일본 관광객이 48.0% 증가하는 동안, 특히 중국 관광객이 242.9% 급증했다. 그렇다고 일본의 비중이 작다는 뜻이 아니다. 엔화 약세의 여파로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국내 주요 상권이 직격탄을 맞은 건 일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설이다. 2012년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 1114만28명 중 일본인은 351만8792명(31.6%)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중국·홍콩 관광객이 급증했다지만 283만6892명(25.5%)으로 아직 2위다.

 미국 외교협회(CFR)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위원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은 중·일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풀고 3국 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일은 서로 으르렁거려도 각각 한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고 호감을 갖고 있다. 서울 외교가에서 만난 한 중국 외교관은 “일본 정치인은 믿기 어렵지만 한국인들과는 통하는 게 많다”고 호감을 드러냈다. 반면 일본 외교관은 “중국은 아니지만 한국에선 형제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우상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한국은 중·일 모두와 관계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중추적 동반자(pivotal partner)’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통해, 일본과는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중간자로서 한국이 조율하는 역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인도주의 사안, 기후 변화 문제, 녹색성장 어젠다 등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슈를 활용하고 동남아와 남미 등 상대적 저개발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우리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자연히 중국과 일본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인민대 청샤오허(成曉河) 교수는 “중·일 갈등이 풀리면 한국의 외교 공간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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