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월급에, 아이 학원비에 … 한국 젊은 부부들 힘들게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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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이모’ 전춘영(왼쪽)씨와 권옥춘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카페. 조금 기다리자 중국동포 권옥춘(52)씨와 전춘영(49)씨가 들어섰다. 권씨는 서울 성북구 수유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한 지 4년째 되는 베테랑 베이비시터다. 전씨는 경기도 용인 수지의 한 가정에서 아이 세 명을 키운다. 초면이었지만 10여 분이 지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니’ ‘자기’라고 부르며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다. 이들의 수다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 한국으로 어떻게 오게 됐나.

 전: 헤이룽장성 출신이다. 중국에서 교사를 하다가 43세에 퇴직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엔 식당 일을 하다가 보모를 맡게 됐다.

 권: 요즘 중국은 버는 것에 비해 물가가 너무 비싸다. 한국 물가가 높아도 한국에서 일하는 게 이익이다. 원래 교사를 하다 1992년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

 전: 중국은 일할 사람이 많아 나이가 들면 할 일이 없다. 중·장년층이 한국으로 많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국에 살면서 서운했던 점은.

 권: 처음에 여러 집을 옮겨다녔다. 한 집에서는 월급 날을 조금씩 미뤘다. 조금만 있다가 준다고 하면서 한 달 반이 돼서야 월급을 주더라. 결국 나올 때는 반 개월치 돈을 못 받았다. 하지만 고용센터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더라. 나갈 땐 뭘 훔쳐간다는 오해도 받았다.

 전: 친구들 만나면 별별 얘기를 다 듣는다. 물건 없어졌다고 난리를 폈는데 며칠 뒤 방 구석에서 나오기도 하고.

 - 폐쇄회로TV(CCTV)를 두는 경우도 있다더라.

 권: 한 친구 얘기가 일한 지 얼마 안 돼 아이를 재우려고 방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주인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아이 데리고 어디로 가느냐고, 앞으로 항상 거실에 있으라고 했단다. 그때 CCTV가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미리 말은 해줘야 하지 않나.

 전: 정말 중요한 건 서로 간의 신뢰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계속 커지게 되고, 우리도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게 된다.

 - 서로 임금 담합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권: 소개소에 대충 임금 수준이 정해져 있다. 애 하나면 150만원이고 한 명 더 있으면 좀 더 주는 식이다. 물론 동포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올려달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얘긴데 이를 담합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전: 요즘은 주인들도 임금 수준을 다 파악하고 있다. 애 엄마가 셋째를 가졌는데 ‘우리도 아는데 월급쟁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 다들 형편이 어려운데, 그렇게 좋은 말로 양해만 구해줘도 좋았다.

 - 한국에 와보니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권: 무엇보다 공부를 많이 시킨다. 애가 7살인데 어린이집에서 오면 피아노와 영어·암산학원에 보낸다. 그리고 집에 오면 저녁이다.

 전: 요즘은 중국 엄마들도 못지않다더라.

 권: 한때 중국 정부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못 내게 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좀 놀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다. 한국의 젊은 부부들은 돈 벌어서 우리 돈 주고, 애들 교육시키고, 대출금 갚고. 정말 힘들게 사는 것 같다.

 - 아이들에게 중국어도 가르치나.

 전: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라. 간단한 일상용어를 가르치는데 나도 그새 많이 잊어버렸더라.(웃음)

 - 국적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전: 가능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은데 아직 귀화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앞으로 기회가 있지 않겠나.

 권: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은 뒤 중국에서 음식점을 해보고 싶다. 딸은 한국 기업에 취직했으면 좋겠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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