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한국인의 위기 극복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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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대한민국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고 오히려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더욱 발전하는 반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 세력의 바로 옆에 붙어 살면서 몇 천년 동안 동화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한반도의 역사는 수많은 민족사 중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35년 동안의 일제 식민 시대에 벌어진 민족 말살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어진 남북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도 약진을 거듭해 온 것이 대한민국 현대사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G20 국가로 도약한 것 역시 대한민국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의 쇠락과 이웃 일본의 침체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인의 이런 능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한국인에게는 위기를 극복하는 특유의 DNA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위기극복 DNA도 잘못된 리더를 만나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음을 또한 역사를 통해 확인해 왔다. 우리는 어떤 시기에 위기를 맞이하고 나라를 잃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국민이 사분오열되고,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서로 싸울 때였다. 기득권 세력과 서민들의 분열이 극에 달해 서민들이 외적의 침입에 따른 지배 세력의 몰락을 오히려 고소하게 생각할 정도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나라를 잃는 불행한 일을 겪었다. 사색 당파와 세도 정치가 극심했던 조선시대 말엽이 그랬다. 양극화가 극에 달한 지금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위기가 아닌가 싶다.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다.

 벌써 10년이 된 일이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감동을 아직 기억하는 이가 많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꼈으며, 뭉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특히 많은 사람이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했다. 감독의 뛰어난 전략·전술 외에도 선수들과의 원활한 소통, 장기적 계획에 따른 소신 있는 팀 운영, 내부경쟁을 통한 긴장감 유지 등 성공 요인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었다. 특히 연고와 인맥에 좌우되지 않은 철저한 능력 중심의 선수 선발과 이를 통한 소신 있는 팀 운영은 성공의 중요한 열쇠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감독이나 코치 및 선후배 간 상하 질서보다는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문화 조성에 힘쓴 것이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됐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흔히 경험하듯 어떤 모임이든 리더에 대한 잡음과 비판, 혹은 비난이 나오게 마련이다. 웬만큼 큰 도량과 능력을 가진 리더가 아니라면 금방 구설에 휘말리기 쉽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모임인 한인회조차 회장 선거는 언제나 시끄럽기로 유명하다. 이런 현상은 항상 순종적이고 불만을 잘 표출하지 않는 이웃 일본 국민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한국인의 특성이라고들 얘기한다. 한국인 개개인의 능력은 누가 봐도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사업을 하면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경험해 봤지만 한국 사람들만큼 똑 부러지게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반대로 분열과 반목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도 처절하게 경험해 왔다.

 양극화와 분열이라는 힘든 시기에 우리는 절반의 지지자만이 아닌 100%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는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을 맞이했다. 균형발전과 사회통합이라는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제 온 국민이 다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투표일에 내가 누구를 선택했든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 명의 지도자를 뽑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국민의 자세일 것이다. 인류사 진화 과정에서 정치와 종교가 왜 분리되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옳다고 끝까지, 변함없이 우긴다면 그것은 정치적 가치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대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남남 분열과 사회 양극화 위기를 대통합의 리더십으로 슬기롭게 극복하고 남북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다산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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