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중관춘·장장파크 "내가 IT메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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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봉명(龍吟鳳鳴)'

용이 하늘로 솟구치며 포효하니 봉황도 뒤질세라 날아 오르며 운다는 뜻이다.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과 상하이 푸둥지구의 장장(張江) 하이테크 파크가 중국 IT산업의 미래를 놓고 겨루는 형세를 빗대는 말이기도 하다.

중관촌과 장장 하이테크는 태생부터 판이하다. 중관촌이 구체적인 그림없이 일단 단지부터 만든 반면 장장은 시작부터 세계적인 IT단지를 목표로 개발됐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고 "중관춘 갑시다"라고 하면 반드시 "중관춘 어디요"라고 되묻는다. 보통은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가 속한 하이텐위엔(海淀園)을 중관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중관춘 과기원구는 다섯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중관춘의 원조는 1988년 국무원이 베이징대 인근 주택가에 만든 '베이징시 신기술산업개발시험구'다. 주택가를 밀어 버리고 개발구를 만들려다 보니 땅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부지가 모자랄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주변지역을 개발구로 편입시켰다. 중관촌이 하나의 연결된 단지가 아니라 뿔뿔히 찢어진 모습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의 IT잡지 '차이나 월드' 탕바오싱(湯寶興) 부총재는 "무계획적 개발로 중관촌이 만성적인 교통난과 부지난을 겪고 있는게 큰 문제"라며 "결국 베이징시는 중관춘 정비에 앞으로 10여년간 2천억위안(약 32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장 파크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92년 진흙밭이었던 푸둥지구에 자리를 잡아놓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의도의 세배 크기인 25㎢(약 83만평)의 바둑판 모양 부지에 거미줄처럼 대로들을 연결했다. 이 부지는 다시 다섯개 지구로 나눠 각 지구엔 같은 업종의 기업과 연구소를 '줄 맞춰' 입주시켰다.

이런 태생적 차이는 결과적으로 두 개발구에 들어선 기업의 성격도 갈라 놓았다.

중관춘엔 '풀뿌리'벤처들이 주로 둥지를 틀고 있다. 한 건물 건너 하나 꼴로 '창업원'이란 간판이 보일 정도다. 당초 베이징.칭화대나 중국과학원 출신의 실험실 벤처기업이 일궈온 IT단지인지라 지금도 대학생.연구원의 창업전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덕에 대학이나 연구소 실험실에서 출발해 덩치를 키운 토종 IT기업이 자연스레 중관춘의 터주대감이 됐다. 중국과학원 계산소 출신 롄샹(聯想), 베이징대의 베이다팡정(北大方正).베이다칭냐오(北大靑鳥), 칭화대 출신 칭화둥팡(淸華東方)이 대표적인 예다.

풍부한 연구인력에 끌려 세계적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들도 속속 중관춘으로 몰려든다. 중관촌기술교역센터 류진밍(牛近明) 주임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시애틀과 캠브리지에 이어 세번째 R&D센터를 중관춘에 세웠다고 하면 말 다 한 것 아니냐"고 자랑했다.

여기에 맞선 장장 파크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장장 파크는 중관춘과 달리 초대형 기업, 외자를 끌어오는데 승부를 걸었다. 지난해 '중신꿔지(中芯國際)집적회로제조유한회사'는 16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단일기업으론 중국 1위를 기록했고, '상하이홍리(上海宖力)반도체제조유한공사'는 14억달러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신꿔지는 대만 자본이, 상하이홍리는 일본과 미국계 자본이 공동 투자한 장장 파크내에 세운 반도체 회사다.

지난 3월엔 대만과 일본계 전자회사들이 4억달러를 들여 '타이롱(泰隆)반도체'를 단지안에 건설하겠다고 약속했고 스위스 로쉬.독일 베링거잉겔하임 등 세계적 제약사의 진출도 눈에 띈다.

IT평론가인 팡싱둥(方興東)차이나랩스 사장은 "중관춘이 머리(R&D)는 큰 데 손.발(자금.생산 기지)이 작다면 장장 파크는 손.발은 큰 데 머리가 못따라 간다"고 비유했다. 당분간 중국 IT산업은 중관춘이 연구.개발을 이끌고, 장장 파크가 개발된 기술을 제품화.기업화하는 양두(兩頭)체제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대세가 장장파크 쪽으로 기울었다는 견해가 많다. 장장은 풍부한 자금에 쑤저우(蘇州).항저우(杭州) 등 인근에 제조기지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엔 이런 매력에 이끌려 중관춘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벤처기업들이 상하이로 이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정재(경제연구소)
남윤호(도쿄 특파원)
양선희(산업부)
정경민(경제부)기자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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