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배삼룡 20일부터 전국투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아요. 하루 하루가 즐겁고, 의미있고…. 덤으로 얻은 인생, 불꽃처럼 살다 가고 싶어요." 전성기 비실대는 연기가 특기였던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78)씨는 지난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외려 꼿꼿했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천진암 직전 대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드니 전원주택 세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중 셋째 집에 들어서자 배씨 모습이 눈에 띈다. 붓을 쥔 채 캔버스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외인의 기척을 눈치챘을 법한데 미동도 없다.

지난해 가을 강원도 일대를 누비며 완성한 스케치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다시 얻은 삶을 '제 2의 인생'으로 정리했다.

지난해 11월 18일.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던 그는 "억"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서울로 긴급후송됐지만 상태는 최악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인들이 송해씨를 장례준비위원장으로 선임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기적이 일어났다. 의식이 돌아온 것은 물론 급속도로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 어떻게 됐어? 할 수 있으니 취소하지 마. 절대로…." 그가 정신을 차린 뒤 처음 한 말이었다.

50년 지기인 구봉서씨와 함께 12월 24일 '폭소 크리스마스 빅쇼'란 제목의 디너쇼를 준비 중이었던 것이 의식불명 상태에서도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입원 한달 만에 퇴원한 그는 예정대로 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대중과의 약속은 생명과도 같은 거예요. 나가서 한 마디만 하고 내려오더라도, 또 연기하다 쓰러지더라도 무대엔 올라야 되는 겁니다. 다리가 후들거릴 때마다 마음 속으로 '삼룡아, 넌 해 낼 수 있어'라고 외쳤죠."

공연을 마친 뒤 그는 청년 시절 못지 않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오는 20일부터 부산을 시작으로 광주.광양 등 전국 투어에 나선다. 구봉서씨와 콤비를 이뤄 추억의 코미디를 재현하는 것이다. 어버이날엔 데뷔 50주년을 총정리하는 '빅쇼'도 열 계획이다.

공연이 끝나면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지난해 광운대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과정을 수료한 그는 공부에도 미련을 보이고 있다. 또 5년 전 시작한 그림 공부에도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배씨가 서울을 떠나 퇴촌으로 옮겨온 지도 올해로 12년째.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지만 인근에 남철.남성남씨 등 동료들이 살고 있어 외롭지 않다. 옛 친구들에게든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든 배씨의 공간은 늘 열려 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신파조의 이야기는 이곳에선 금물이다.

"난 과거의 추억이나 명성에 기대 사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잘 안 합니다. 현재와 미래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가져야 영원한 현역, 청춘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