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우리나라 돈은 어떻게 찍어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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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여러분 돈을 어디에서 만드는 지 알죠? 돈을 시중에 푸는 곳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지만 실제로 돈을 만드는 곳은 조폐공사예죠.

한국조폐공사가 지난 26일로 세워진지 50년이 됐어요.

옛날에는 돈을 외국에서 사오기도 했답니다.외국 돈을 사오는 게 아니라,우리나라 돈을 외국 공장에 주문해 만들어 온 것이죠.요새는 우리나라 돈의 품질이 좋아 외국에 수출되기도 하지만 조폐공사가 처음 문을 연 50년 전만 하더라도 형편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나라 돈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우리나라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일원권부터 백원권까지 4종류의 돈을 찍어냈습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인쇄기를 가진 곳이 여기 뿐이어서 어쩔 수 없었죠.

그나마 6.25전쟁으로 이 곳의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답니다.

그래서 일본 대장성(우리나라 재정경제부에 해당합니다) 인쇄국에 주문해 거기에서 만든 돈을 수입해다 썼원래 화폐는 철저한 보안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에서 찍어내야 하지만 당시 제대로 된 인쇄기를 가진 곳이 이 회사뿐이어서 인쇄회사에서 화폐를 발행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6·25 전쟁으로 그나마 국내에 있는 돈을 찍을 수 있는 시설이 모두 파괴되면서 일본 대장성(우리나라 재경부에 해당하죠) 인쇄국에서 우리 돈을 찍어 수입해다가 썼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가 문을 열었습니다.처음엔 제대로 된 공장이 없어 부산시에 있는 크레파스 공장을 인수해 인쇄기를 들여 놓고 천원·백원권을 찍기 시작했답니다.

전쟁이 터진 이후 물자는 귀해지고 찍어내는 돈은 많아지면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때문에 우리나라 돈은 건국 이후 세차례나 화폐단위를 바꾸는 통화조치(화폐개혁)를 겪어야 했죠.

화폐개혁은 화폐의 단위를 바꾸는 것은 물론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극비리에 단행됐습니다.

화폐개혁을 한다는 정보가 새나가면 사람들은 예전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각종 물건과 부동산 등을 사놓으려 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 차례 화폐개혁이 이뤄질 때마다 처음에는 외국에 새 돈을 주문해 군수물자로 위장시켜서 국내에 들여왔어요.

조폐공사에서 새 돈을 찍다보면 비밀이 새나갈 것을 걱정한 것이죠.

당시 인플레이션이 하도 심해서 정부가 조폐공사 인쇄기에 빨간 딱지를 붙여 돈을 만들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54년2월 물가 상승률이 1백50%에 이르자 화폐 발행을 중단시켰고,이 조치는 10월까지 계속되었답니다.

해방될 때 ‘원’이었던 우리나라 화폐단위는 53년에 ‘환’으로 바뀌었다가 62년 3차 화폐개혁 때 다시 ‘원’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질이 좋지 않던 우리나라의 화폐는 64년 부산에 있던 조폐공장이 대전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설비를 들여온 데 힘입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65년에 세종대왕 초상이 들어있는 백원권이 나왔는데,이 돈은 고급 인쇄기술을 사용해 위조하기 힘들게 만들어졌습니다.

동전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66년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상평통보’같은 엽전이 조선시대에도 만들어졌는 데,왜 그동안 동전을 만들지 못했나 이상하죠? 그전까진 요즘 동전의 원재료인 소전(素錢)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수입했어요.

7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 경제의 덩치가 커져 고액권이 필요하게 돼 72년에 5천원짜리,73년 만원짜리 돈이 나왔습니다. 그때까진 1천원짜리가 가장 큰 돈였죠.

72년에 나온 5천원권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은화(隱畵)를 넣었습니다.은화란 환한 빛에 비춰보면 지폐의 왼쪽 여백에 나타나는 숨어있는 그림입니다.위조지폐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기술
죠.

그런데 당시 나온 5천원권에 그려져 있는 율곡 이이(李珥) 선생님의 초상을 보면 서양인처럼 콧날이 오똑하고 매서운 인상을 풍깁니다.

그때 5천원권 도안을 영국에 부탁했는데,영국인 디자이너가 이이 선생님 동상을 바탕으로 원판을 도안하면서 자기 기준대로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돈의 초상화는 77년6월 국내 화가가 그린 영정으로 바뀌면서 현재의 이이 선생님 모습을 찾게 됐답니다.

90년대 들어 컬러복사기가 많아지면서 위조지폐를 만드는 기술과 이를 막기 위한 조폐 기술이 함께 발전했죠.

94년에 나온 만원짜리에는 부분노출 은선(隱線)이 들어있어요.컬러복사기로 이 돈을 복사하면 부분노출 은선이 검은 줄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내년부터는 5천원짜리에도 은선을 넣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돈 만드는 기술이 이렇게 발전하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어엿한 돈 수출국이 되었어요.50년전엔 외국에서 우리나라 돈을 수입해 썼는데,이젠 외국 돈을 우리가 만들어 팔게 된 것이죠.

70년 태국에 수입증지를 처음 수출한 이후 지금까지 6억달러어치의 화폐를 수출했으며 올들어서만 2천5백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답니다.

컴퓨터시대를 맞아 금융과 상거래가 전자화되면서 전통적인 화폐의 모습도 차츰 변해가고 있습니다.

전자화폐라는 새로운 개념의 돈이 등장한 것이죠.전자화폐는 집적회로(IC)칩이 내장된 카드에 일정 금액을 넣어 놓고 가맹점 또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미래의 돈’입니다.

조폐공사도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지난해 전자화폐 업체로 유명한 영국 몬덱스사와 손잡고 전자화폐 제작에 나섰답니다.

앞으로 지폐와 동전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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