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빛낸 선수들] '쥴리메의 히어로', 자일징요(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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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스웨덴, 62년 칠레, 그리고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해 쥴리메컵을 영구소유하게 된 브라질.

브라질 3회 우승의 주역으로 월드컵 축구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온 선수는 '축구의 황제'라는 단어 이외에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펠레다.

반면 펠레의 찬란한 기록에 가려 상대적으로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시기적으로 펠레의 전·후에서 활약했던 '작은 새(Little Bird)' 가린샤와 자일징요로 불린 자이르 벤츄라 피요(Jair Ventura Filho)가 바로 그들.

사실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은 17세의 어린 펠레보다는 '절름발이 스트라이커' 가린샤(Garincha)였고,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쥴리메컵을 브라질에 안긴 최고의 수훈선수도 펠레가 아니라 6경기 연속득점을 기록한 자일징요였다.

결국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자일징요가 없었다면 브라질의 3회 우승은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로 늦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필연적으로 펠레는 현재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저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 바꿔 말하면 현재 펠레가 누리고 있는 명성의 일부분에는 자일징요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가린샤-펠레-자일징요'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계보는 영구보존된 줄리메컵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브라질 축구사의 산증인인 셈. 그 마지막 한 축을 자일징요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으며 이 스트라이커 계보는 '자일징요-소크라테스-지코-호마리우-호나우도'로 이어져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꽃을 피웠다.

자일징요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한 후 예측 불가능한 캐넌 슈팅을 자유자재로 터트리는 모습, 그리고 순간적인 방향 전환(Electric Turn Of Pace)으로 내로라하던 당대 최고 수비수들을 볏단 제끼듯 따돌리는 모습 등은 가린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1944년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에서 태어난 자일징요의 어릴적 우상이 바로 가린샤. 자일징요는 가린샤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가린샤의 등번호 '7'번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며 어릴적 꿈을 이뤘다.

그는 보타보고 클럽에서 레프트 윙과 센터포드로 프로에 입문했고 1963년 20살의 나이로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됐다. 이듬해에는 가린샤의 부상 공백을 틈타 '리틀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대전에서 첫 출전하며 A매치의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자일징요는 66년 영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장한 것을 비롯해 1963년부터 1982년 40세의 나이로 대표팀에서 물러날때까지 A매치 82경기에 출장, 34득점을 기록했다.

◇ 1966년 제8회 영국 월드컵대회.

58년 스웨덴대회와 62년 칠레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은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3인방 가린샤-펠레-자일징요가 모두 출전해 가공할만한 삼각편대를 형성했기에 브라질의 3회 연속 우승이 유력했다. 쥴리메컵의 주인공은 당연히 브라질일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본선 1라운드 탈락의 날벼락이 브라질의 몫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영국 윌드컵대회 최대의 이변이 대회 초반에 벌어지고 만 것이다.

포르투갈, 헝가리, 불가리아와 함께 본선 3조에 속한 브라질은 첫 경기 출발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본선 첫 상대는 불가리아. 브라질은 전반 15분 펠레의 득점과 후반 18분에 터진 가린샤의 골로 2-0으로 불가리아를 가볍게 제압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베네가 이끄는 헝가리에 1-3으로 패하고 에우제비오가 2골을 터트린 포르투갈에 2-4로 대패, 1승 2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쥴리메컵의 영구보존을 4년후로 미루고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이 대회에서 자일징요는 레프트 윙으로서 본선 1라운드 3경기 모두 선발 출장했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해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4년뒤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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