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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부인’ 다시 몰려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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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부활할 것이다. 한국 주식·채권 시장에 외국 자금이 밀려들 수 있다.’

 증권사들이 이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일본 엔화를 빌려 미국 국채나 한국 주식·부동산 등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엔 일본과 다른 나라와의 금리 차가 엔 캐리 트레이드를 만들었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맞은 일본은 9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제로 금리를 유지했다. 당시 미국은 기준금리가 5% 선이었다. 일본에서 돈을 빌려 미국 채권에 투자하면 금리 차이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 금리도 제로에 가까워진 지금은 이유가 다르다.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원인이다. 사실 엔화 가치 하락은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공공연히 내놓은 정책이다.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기를 끌어올린다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다.

 엔화 가치가 하락할 것 같으면 제3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예컨대 1달러에 87엔인 지금, 87만 엔을 빌려 1만 달러로 바꿔 놓는다고 하자. 만약 1년 후 엔화 가치가 95엔까지 떨어진다면, 원금 87만 엔을 갚기 위해 필요한 돈은 9160달러가 된다. 그냥 환전만 해도 1년 새 840달러(8.4%) 이익이 생기는 셈이다. 이자와 외환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빼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대신증권 박중섭 연구원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상당 부분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엔화 대비 강세를 보이는 통화 쪽에 투자할수록 유리하다. 이런 점에서 달러와 유로는 점수가 깎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경기를 일으키려고 정부가 돈을 풀고 있어서다.

 대안은 올해 통화 강세가 예상되는 신흥국 쪽이다. 박 연구원은 “그중에서도 경제·재정 안정성과 주식·채권의 자유로운 거래환경까지 고루 갖춘 한국이 엔 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 캐리 트레이드엔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외국에 투자하는 일본인들도 가세할 수 있다. 이건 2000년대 초반 엔화를 가지고 외국 자산을 부지런히 사들였던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와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은 일단 한국 주식 시장에 좋은 소식이다. 돈이 많이 들어와 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국내 주식 중에 무얼 고를까. 증권사들은 선택 키워드로도 ‘엔저’를 들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질 때 이익을 보거나, 별 영향이 없는 업종들이다.

 수혜 업종으로는 기계·여행이 꼽혔다. 기계는 일본산 부품 수입가가 떨어져 이익이 늘 수 있다. 토러스투자증권 이원선 연구원(이사)은 “과거 10년간 엔화 약세 때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업종이 기계”라고 말했다. 여행은 일본 여행객 증가가 호재다. 국내 여행사들은 외국인 여행객을 데려오는 것보다 내국인을 내보내는 것이 많아 엔화 약세가 약이 된다는 설명이다.

 정보기술(IT) 업종은 영향이 거의 없다는 ‘중립’ 분야로 꼽혔다. 일본과의 격차를 확 벌린 삼성전자 등은 웬만한 통화 가치 변화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실제 과거 10년을 보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전에는 엔화 약세가 IT 주가를 끌어내렸으나 금융위기 후에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일본에 비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조선 업종 역시 ‘중립’에 속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성차·부품과 철강은 전망이 어두웠다. 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완성차와 부품은 최근 10년 사이 엔화가 약세로 접어들 때 주가가 가장 많이 흔들린 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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