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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등장한 '이야기 할머니'에 화들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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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에도 은퇴·고령자들에게 ‘앙코르 커리어’를 열어주기 위한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증권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차모(56)씨는 요즘 금융회사 출신 은퇴자들과 중소기업을 연결시켜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재무관리와 세무, 인수합병(M&A) 등 금융업 분야별로 경험 많은 은퇴자들의 인력 풀을 구성해 놓고 분야별로 인력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이들을 파견 근무시키는 사업이다. 금융회사 임원급의 실력을 산업현장에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로, 사회적 기업 형태로 조직을 꾸릴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공익사업 성격을 갖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은퇴자들의 전문 컨설팅 덕분에 중소기업이 자리를 잡아 회사가 커지면 파견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국학진흥원이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도 주목할 만하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구수한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조손(祖孫) 세대 간의 문화 소통과 인성 교육이 가능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고령자의 지혜를 후세에 전하는 의미 있는 사회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든 사례다. 2009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56세 이상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2011년 300명, 2012년 600명, 그리고 올해는 1000여 명의 이야기 할머니가 전국 3000여 개의 유치원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래동화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국학진흥원 김병일 원장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예절이 눈에 띄게 좋아져 학부모들이 매우 만족한다” 고 말했다.

 이 사업은 2009년 대구·경북권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갈수록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부터는 선발 지역을 전국(제주 제외)으로 확대하고 선발 인원도 크게 늘렸다. 선발된 이야기 할머니는 6개월간의 전문 양성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해당 지역의 유치원 등에 파견돼 활동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다. 국학진흥원은 조만간 할아버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퇴직자들의 재취업·재교육을 도와주는 사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점차 싹이 트고 있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는 가칭 ‘노후생활지원법’을 만들어 베이비부머의 노후설계를 돕기로 했다. 욕구·경력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맞춤형 노후설계 지원과 교육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서울시도 2011년부터 400억원을 들여 시니어클럽·고령자 취업알선센터 등 관련 단체에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만 공공 일자리 1만3000개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경기도 광명시는 ‘5060 일자리 사업단’을 꾸려 6억6200만원의 예산으로 은퇴 시민 100명에게 시에서 발굴한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노령연금 등 돈을 직접 주는 것으론 고령자 복지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 예산을 고령자 대상의 사회 서비스인 일자리 만들기와 교육·훈련 등 생산적인 쪽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광기(팀장)·김동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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