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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5060 대학생’ 100만명 … 나라가 재취업 챙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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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월넛크릭의 로스무어 은퇴자 마을에 사는 고령자들이 공동 작업실에서 스웨터와 가방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수익금은 지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돕는 자선활동 등에 쓴다. [샌프란시스코=김광기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레전트힐에 있는 2년제 지역 전문대학(커뮤니티 칼리지) 디아블로 밸리 칼리지(DVC). 이곳에는 최근 몇 년 새 50세 이상 베이비부머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 전체 2만2000여 등록 학생 중 약 10%인 2000여 명이 베이비부머다. 이들이 DVC를 찾는 것은 재취업을 돕는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거의 공짜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노동자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었던 제임스 홀리(51)는 DVC 건축학과에서 실내 인테리어와 목공 분야를 심화 학습한 뒤 지난해 재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대학이 실용적인 내용의 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지역 기업들과 연계한 취업 정보까지 제공해줘 재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세계 주요국은 50대 이상 장년·고령자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넓혀주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요즘 고령자들은 과거와 달리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경륜과 기술·지식은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고령자를 위한 재교육·재취업 지원 시스템을 가장 잘 갖춘 나라로 꼽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학, 기업, 비영리단체 등이 손잡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 중심에는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공공 커뮤니티칼리지가 있다. 애당초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2년간 무료 대학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칼리지는 요즘 베이비부머 재교육의 메카로 떠올랐다. 학비는 학점당 30달러 안팎. 1년에 30학점을 이수한다 해도 900달러(약 96만원)면 충분하다. 더구나 기업 등과 연계한 단기 학습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미국 전역의 커뮤니티칼리지는 1200여 개, 학생수는 600만 명을 헤아린다. 이 중 100만 명 정도가 베이비부머인 것으로 커뮤니티칼리지연합회는 추산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생 카드의 하나로 커뮤니티칼리지에 대한 지원액을 대폭 늘렸다. 2020년까지 책정된 예산이 120억 달러다.

 기업과 비영리단체들이 참여하는 민간 주도의 프로그램들도 부쩍 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앙코르 커리어’를 돕는 비영리단체 시빅벤처스가 인텔 등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손잡고 만든 ‘앙코르 펠로십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는 기업들이 돈을 대 자사 퇴직자들이 6개월~1년간 급여를 받으며 사회 서비스 분야 등에서 새 일을 찾도록 지원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기업들은 또한 우수한 고령 인력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파트타임 등 탄력근무제를 적극 시행하는 추세다.

 유럽에서도 대학이 은퇴자 재교육 기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사는 피아 아컬룬드(53)는 출판업체에서 조기 퇴직하고 70대까지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스톡홀름대 심리학과에서 다시 공부한 경우다. 그는 50대에 들어서면서 심리상담사로 새로운 인생을 여는 데 성공했다. 아컬룬드는 “사회 경험을 충분히 쌓고 심리상담을 시작한 게 오히려 장점이 돼 젊었을 때보다 수입이 좋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퇴직자 재교육 또는 평생학습을 통한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는 힘은 대학 무상교육이다.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과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은 대학 교육이 무료인데도 고졸과 대졸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아 대학 진학률이 40% 선에 불과하다”며 “대학은 오래전부터 일반 사회인의 재교육·재충전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대학들은 다양한 산·학 협동 프로그램에도 중·장년 학습자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재취업을 돕고 있다.

일본 도쿄시 고토센터에 마련된 고령자 구인 정보게시판 앞에서 한 여성 고령자가 일자리와 교육훈련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도쿄=김동호 기자]

 일본은 ‘평생현역’을 모토로 이중·삼중의 고령자 재취업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최대 재취업 네트워크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실버인재센터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자 지자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인구가 많아 취업과 퇴직이 활발한 도쿄도(東京都)였다. 도쿄도는 73년 도쿄도고령자취업대책협의회를 설치하면서 다른 지자체들의 모범이 됐다.

 이렇게 시작된 실버인재센터는 현재 전국 47개 지자체 산하에 모두 1294개가 운영 중이다. 전국의 회원은 모두 80만 명에 이른다. 고령자 재취업 시스템이 뿌리를 내려 실효를 거두자 일본 정부는 80년부터 운영 예산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오야마 히로시(大山宏) 전국실버인재센터사업협회 업무부장은 “회원은 정년퇴직한 사람들”이라며 “지식과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찾고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는 실버인재센터와는 별도의 고령자 재취업 네트워크도 가동하고 있다. 일본 최대 도시답게 회사가 많고 퇴직자도 많은 점에 착안해 양쪽을 서로 연결해주는 활동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출범한 게 도쿄시 고토(仕事·일)센터다. 오카노 히로시(岡野弘) 고토재단 과장은 “매년 신규 회원이 9000명씩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재취업에 성공해 노후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자 재취업은 세수 확대와 복지비용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라고 했다.

 전국 회원 4만 명의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에서도 일거리를 찾아주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비슷한 연배의 건강한 고령자가 병원·온천 등에 데려다주는 복지차량 서비스가 그런 경우다.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시에서 이 일을 하는 오타 요시카쓰(大田義勝·65)는 “월 4만~5만 엔(약 60만~75만원) 정도의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건강을 유지하며 부족한 생활자금을 충당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노동정책연구소의 이토 미노루(伊藤實) 특임연구원은 “일본에는 퇴직 후 섣불리 자영업에 뛰어드는 고령자가 드물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재취업 인프라를 깔아준 덕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김광기(팀장)·김동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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