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앗아간 스물둘 청년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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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가정형편이 힘들다고 먼저 병역부터 마치겠다더니 엄마를 두고 먼저 가면 어떡해…상민아∼”.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백병원 영안실. 어머니는 먼저 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옆에 있던 아버지와 여동생의 볼에도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경기도 일산소방서 소속 의무소방대원인 김상민(22·사진) 일방은 이달 17일 고양시의 한 제조업체 창고에서 난 화재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가 2층에서 1층 바닥으로 추락한 뒤 순직했다. 사고 당시 김 일방은 2층에서 화재 진압용 호스를 당기다 제품 운반용 리프트 통로에 빠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고 뇌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29일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를 당한 지 13일 만이었다.

 숨진 김 일방은 올 3월 초 의무소방대원으로 자원입대했다. 성균관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한 뒤 곧바로 휴학계를 냈다. 여동생과 자신이 동시에 대학에 다니면 부모님에게 부담이 될 거라 판단해서였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김 일방은 2010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모 대학 의예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둔 뒤 독학으로 1년6개월 만에 대학에 입학했다.

 군 입대보다 더 위험하고 힘들 수도 있는 의무소방대원을 자원한 것은 틈틈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바쁜 일과를 쪼개 공부를 했고, 지난 9월 4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에 합격했다. 중장비 운전 일을 하는 아버지 김종완(55)씨는 “재수, 삼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독학으로 공부한 장한 아들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의무소방대=2001년부터 시행된 대체복무제도다. 소방대원은 지원자에 한해 시험을 거쳐 선발하며 복무 기간은 23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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