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건평 뭉칫돈 무혐의 혼란만 부추긴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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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황선윤

사회부문 기자

지난 5월 18일 오전 창원지검 차장검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70)씨의 변호사법 위반과 횡령 혐의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갈 즈음 차장검사가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자금추적 과정에서 이것과 비교 안 될 거대한 뭉칫돈이 발견됐다. 노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고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어서려던 20여 명의 기자가 질문을 쏟아냈고 이튿날 뭉칫돈 사건은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뭉칫돈과 연관 있는 것으로 지목된 건평씨와 계좌의 실제 주인이자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된 경남 김해의 고물상 박모(57)씨가 “사실이라면 목숨을 걸겠다”고 항변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5월 23일)를 앞둔 시점이어서 온갖 정치적 해석도 난무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흘 뒤 슬쩍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뭉칫돈과 노씨는 연관이 없다. 계좌와 노씨의 거래관계를 연관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수사는 계속한다고 했다. 박씨의 자택·사업체에 대한 압수수색과 광범위한 계좌추적이 이어졌다.

 7개월여 지난 뒤 뭉칫돈은 건평씨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고물상 박씨도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검찰은 27일 “박씨가 관리하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금 흐름을 추적했으나 범죄 혐의를 인정할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해 박씨를 ‘혐의 없음’ 처분했다”고 최종 발표했다. 계좌의 돈은 박씨가 운영하는 회사가 거래처로부터 고철 등을 사고팔며 주고받은 돈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다만 “박씨가 2008년 김해시 진영읍 소재 토지를 매수하면서 타인 명의로 이전등기를 한 사실이 밝혀져 불구속 기소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검찰은 스스로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신뢰를 깎아먹은 꼴이 됐다. 혐의 내용이 제대로 확인도 되지 않은 ‘의혹’ 차원의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출처가 의심스러운 뭉칫돈의 흐름이 드러난 이상 수사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씨와 박씨의 명예와 인권, 그사이의 마음고생과 사업상의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무겁게 입을 여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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