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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술 가라테, 태권도 '올림픽 퇴출'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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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태권도 여자 67㎏ 이상급 국가대표 이인종(30)이 지난 7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발차기 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0일 세계태권도연맹(WTF·총재 조정원)은 낭보를 접했다. 2015년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제1회 유러피안 게임에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었다. 4년마다 개최될 유러피안 게임은 유럽 국가들이 참가하는 종합스포츠 대회다. 우리로 치면 아시안게임과 비슷하다. 태권도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준 사례다.

 태권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지난 6일(한국시간) 콜롬비아 툰하의 독립경기장에선 세계 태권도 품새선수권대회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1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잉카 제국의 후예들은 150여 명의 콜롬비아 태권도 수련생들의 시범공연에 열광했다. 화려한 발차기와 절도 있는 정권지르기에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런던 올림픽 이후 태권도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태권도 관련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는가 하면 WTF 가맹국도 꾸준히 늘어 204개국이 됐다. 런던에서 보여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는 평가다.

 이는 내년 9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앞두고 긍정적인 신호다. 총회에서는 태권도를 포함한 올림픽 핵심종목 26개를 25개로 축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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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2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집행위원회에서 퇴출 후보를 추린 뒤 총회에서 표결로 퇴출 종목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정원(65) WTF 총재는 “태권도는 런던 올림픽에서 환골탈태의 계기를 마련했다. 올림픽 핵심종목으로 잔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태권도가 올림픽 잔류의 안전지대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IOC가 정치적 판단을 할 경우 태권도는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IOC는 유럽 중심적인 사고로 움직인다. 함께 퇴출 후보로 거론되는 근대 5종, 트라이애슬론, 복싱, 승마 등은 근대올림픽과 역사를 함께한 ‘친 유럽’ 종목이다. 태권도는 이들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데다 최근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올림픽 진입을 노리고 있는 종목도 위협 요소다. 현재 가라테·우슈·야구(소프트볼 포함)·스쿼시·롤러스케이트· 스포츠클라이밍이 올림픽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 6개 종목은 지난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프로그램 위원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올림픽 진입 작전을 시작했다.

 이 중에서도 가라테의 위협은 가장 실질적이다. 일본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라테연맹의 안토니오 에스피로스(스페인) 회장은 “우리는 가라테가 올림픽 정신에 부합되는 스포츠라고 믿는다. 올림픽 진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가라테연맹은 스페인에 본부를 두고, 유럽 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 적어도 유럽인들이 보기에 태권도와 가라테는 ‘엇비슷한 동양 무술’이다. 둘 중 하나가 올림픽 종목이 된다면 다른 하나는 빠져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스폰서십이다. 태권도는 아직까지 굵직한 후원 기업을 잡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이 태권도를 적극 후원하지 않는 게 올림픽 핵심종목 선정에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WTF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이 많지만 태권도를 후원하는 기업은 없다”며 "IOC가 이것을 태권도의 국내 위상이 미약하다는 것으로 판단할 소지가 있다”며 걱정했다.

 다른 종목의 거센 위협과 글로벌 스폰서십의 부재 등에도 불구하고 태권도인들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힘주어 말한다. 잔류가 확실하다기보다 반드시 잔류시켜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경희대 전익기(태권도학) 교수는 “정부가 관심을 갖고 나서줘야 한다”며 “태권도는 원조 한류다. 손 놓고 있다가 올림픽에서 퇴출된다면 종주국으로서 참담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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