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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점에서 맞는 3·1절-독립은 이를 얻기 위해 싸우는 민족에게만 부여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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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국교정상화 후 처음으로 3·1절을 맞이한다. 3·1운동이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에 반대하여 일어선 거족적인 민족독립 운동이었으니 만큼 일본과 수교한 마당에 맞이하는 3·1절의 감회는 유달리 크다.
거금 47년전 우리민족은 악독·잔인한 일제통치에 대해 거의 적수공권으로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차 대전 직후 「내셔널리즘」의 사조가 팽배하게 흐르고 민족자결원칙이 피압박 민족해방을 자극하고 있던 세계정세를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이 운동은 그 규모가 크고 운동이 줄기찼던 점으로 보아 그리고 이를 탄압한 일제통치가 야수성을 아낌없이 보여준 점으로 보아 그당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사건이었다.
독립항쟁과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일제식민통치가 얼마나 가혹했던가는 피살자 7천5백명, 부상자1만6천명, 투옥4만7천명에 달했던 것만으로 알 수 있으니 3·1운동이야말로 일본침략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민족의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일시에 폭발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큰 전민족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지도사의 탁월한 영도력과 치밀한 계획만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요, 전 민족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궐기할만한 정신적 소지가 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 우리는 아득한 옛날 조상으로부터 면면히 흐르는 독립정신·자주정신의 정화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요, 짓밟혀도 짓밟혀도 가시지 않는 민족정기의 발로를 보게된다.
반제투쟁, 피압박민족해방투쟁으로서의 3·1운동은, 민족운동은 (ㄱ) 그 전개과정에서 끝까지 지도해 나갈 지도세력이 형성돼있지 않았고 따라서 운동전체에 치밀한 계획성이 없었다는 것 (ㄴ) 일제의 「롤백」에 대항하기 위한 무장투쟁을 전혀 준비치 않았다는 것 (ㄷ)반제투쟁을 반봉건투쟁과 결부시켜 근대화를 의식적으로 추구치 않았다는 것 (ㄹ) 국제정치면에서 반제투쟁 상호간에 긴밀한 제휴를 꾀하지 않았다는 것 등 몇가지 약점을 지녔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실패에 돌아갔다.
그렇지만 3·1운동이 보여준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정신,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수난을 감수하는 희생정신은 일제무단 통치정책을 근본적으로 후퇴시켰고 소위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2차대전후 「카이로」선언에서 한국독립을 시인케한 근본적인 계기를 이루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빨고 자라고, 독립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민족에게만 부여된다는 이치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3·1운동은 통일전선을 자각치 못하면서도 통일전선 형식을 취했던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을 계기로 민족해방운동이 좌우 양익으로 분열되어 서로들 주도권을 다투게 되었다는 것은 불행하지만 묵과치 못할 사실이다.
3·1운동이 민족해방운동사상 분수령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1919년 중국의 5· 4운동, 그리고 1848년2월 전「유럽」을 휩쓸었던 독립운동·민주화운동이 각각 그 민족의 통일독립운동에 있어서 분수령적 위치를 차지한 것과 흡사하다. 주의할 것은 한국은 딴 나라들과 달라 아직까지도 국토가 분단되어있고 또 통일·독립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 일·독립과정에 있어서 좌·우익간의 주도권다툼은 아직도 미 결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점 「내셔널리즘」의 정통을 자처하고있는 자유한국은 자유사회체제를 공고히 발전시켜 앞으로의 통일·독립운동에 있어서 반드시 영도권을 확집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작년에 우리는 국제권력 정치변화의 대세에 순응하여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 국교정상화 때문에 국론이 완전히 두 조각으로 갈렸고 아직도 국민가운데는 국교정상화를 못마땅히 생각하고 위험천만한 것으로 생각하는자 결코 적지 않다.
아닌게 아니라 3·1독립운동에 있어서 흘린 선열들의 고귀한 피를 생각하면 왜 그처럼 값싼 타협을 했는가 분노를 금치 못할 점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외교란 어디까지나 상대가 있는 것이요 또 조약체결이란 결국 체결국의 국력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미국이 극동정책상 한·일 국교를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더 좋은 조건을 갖고서 국교를 정상화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추측도 간다.
국교정상화에 대한 찬반을 떠나 현재 우리국민에게 공통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모두 3·1정신을 받들어 민족의 자주·독립을 수호해 나가는 것이요, 일본의 신식민주의적인 재침기세를 거족적으로 경계하고 배격해 나가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정체를 허용치 않는 것이요, 민족사 상호간에는 새 차원에서의 접촉이 행해지기 마련이다.
3·1절을 다시 맞는 오늘 우리는 어떤 차원위에서 한·일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려는가를 깊이 생각함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좌절감과 「니히리즘」은 금물인 것이요, 희망을 향한 전진만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신상초>(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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