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면서도 ‘없는 척’ 211만 명 건보 무임승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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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맞벌이 직장인 박모(43)·이모(39)씨 부부는 매달 건강보험료로 총 50만원 가까이 낸다. 월급날만 되면 급여명세서에서 어김없이 빠져나간다. 모든 직장인이 박씨 부부 같은 건 아니다.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만 자영업자처럼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한 직장인이 286만 명(전체의 16%)인 것으로 추정됐다. 또 급여를 받는데도 소득이 없는 ‘피부양자’로 분류돼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이도 21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3일 ‘건강보험이 경제의 비공식 부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총 497만여 명이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건보는 소득·재산·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기 때문에 재산이 적은 경우 소득액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월급쟁이 직장가입자보다 적은 보험료가 부과된다. 피부양자의 경우 소득이 없다고 인정되면 아예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건강보험은 고령화 탓에 쓸 돈이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다. 게다가 건보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 ‘건보 지하경제’가 이처럼 심각하면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漏水)는 더 심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0년 1조2994억원 적자를 냈다. 지난해와 올해엔 흑자를 기록 중이지만 불황으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윤 연구위원은 직장가입 적용대상이 아닌 일용직 노동자 등을 제외하더라도 407만여 명이 직장가입자로서의 정당한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407만 명 중 소득이 하위 40% 이하인 저소득층은 48만 명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중산층 이상에서 광범위하게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누수의 이유로는 ▶가입자 본인이 직장 가입을 고의로 회피하는 경우 ▶고용주가 비용을 줄이려고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경우 등이 꼽혔다.

 무엇보다 보험공단이 가입 대상자의 소득자료와 사업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윤 위원은 “국세청이 2009년 근로장려세제(EITC, 일하는 빈곤층에 지급하는 보조금)를 도입하면서 일용직 근로자의 소득 및 사업장 정보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그러나 보험 공단이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가 커질수록 경제에 미치는 악순환도 심해진다. ‘보험료 징수 감소→세수 확대→세율 인상→사회보험 가입 회피’로 이어져 사회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경제 활력도 훼손한다. 윤 연구위원은 해법으로 ▶조세 행정과 사회보험 간의 긴밀한 ‘정보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동안 국세청·건강보험공단 등으로 바뀌어 온 각종 사회보험 ‘통합징수’ 주체에 대한 논의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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