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함정에 빠진 한국MS

중앙일보

입력

한국MS가 오는 26일 국내에 출시하는 윈도XP의 가격을 놓고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꼼수를 부리다가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

한국MS는 윈도XP의 국내 출시 날짜가 목전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이 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MS는 윈도 95, 98, 2000, 미(ME) 등 그동안 내놓은 운영체제를 비롯한 모든제품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단일 가격'(Worldwide One Price)을 적용해왔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어느곳에서도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판다는 것이 MS의기본 정책이며 한국MS도 본사의 이같은 정책을 충실히 지켜왔다.

지난 3월 정부의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계기로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할때도 한국MS는 `세계 단일가격'을 내세워 거절했었다.

한국MS는 이처럼 금과옥조로 지켜왔던 단일가격 정책을 이번 윈도XP 출시의 경우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은 한국MS가 지난달 21일부터 소프트비젼, 옥션, 영진닷컴, 삼성몰 등 12개 쇼핑몰을 통해 윈도XP 출시전에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돈을 받고 이 제품의 판매를 약속하는 예약판매를 실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국MS는 이 행사를 통해 윈도XP 가정용 제품과 기업용 업그레이드 제품을 정상가에 비해 각각 26%와 57% 할인한 26만9천500원과 15만8천900원에 판매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같은 할인율을 역으로 계산하면 이들 제품의 정상가는 각각 36만6천원이 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쇼핑몰(http://www.msshop.co.kr)과 영진닷컴 쇼핑몰에는 이번행사가 끝나면 이들 제품을 36만6천원에 판다며 정상가를 명시해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36만6천원이 미국에서 판매될 윈도 XP 가정용과 기업용 업그레이드 제품의 정상가인 199달러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는 것. 199달러는 공교롭게도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약판매의 할인가격인 26만9천500원과 비슷하다.

결국 한국MS가 국내에서만 비싸게 판다는 비난을 피하고 그동안 고수해왔던 `세계 단일가'라는 기준을 지키려면 윈도 XP의 권장소비자가는 36만6천원이 아니라 199달러와 비슷한 26만9천500원 정도가 돼야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예약판매를 통해 제품을 대폭 싸게 구입하는 것으로 믿고 기꺼이 돈을 지불한 소비자들은 제품이 출시된후 정상적으로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에 비해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MS는 윈도XP를 한국에서 가장 비싸게 판다는 비난을 감수하든지 예약판매를 통해 싸게 팔지도 않으면서 싸게 파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욕을 먹든지 둘중의 하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같은 결과가 발생된 것은 한국MS가 윈도XP를 띄우기 위해 예약판매를 실시하면서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탓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MS는 예약판매를 통해서 판매하는 윈도XP의 가격을 전세계 `세계 단일가'인 199달러의 기준에 맞춰 26만9천500원으로 정해놓고 마치 최대57%나 깎아주는 것처럼 속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잔꾀를 부리려다가 자기 모순에빠진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MS 마케팅팀 권찬 부장은 "인터넷 쇼핑몰 협력업체와 우리가 예약판매를 하면서 다소 과욕을 부렸다"고 잘못을 부인하지 않았다.

권 부장은 "아직 윈도XP에 대한 권장소비자가격이 정해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미리 돈을 내고 제품 구입을 예약한 고객에게는 내걸었던 할인율을 지키지 못할 경우 어떤식으로든 보상을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MS가 `세계 단일가'에 맞춰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할 경우 `가격을 높게 정해놓고 대폭 할인하는 판매 방식'을 계획했던 국내 총판 및 유통업체들의 거센반발에 부딪힐 전망이다.

결국 한국MS가 작은 이익에 연연하다가 기업 이미지가 크게 실추하게 됐으며 국내 총판 등 협력업체들로부터도 신뢰를 잃을 위기를 맞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박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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