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업종 변경 … “94년 쌍용동 개발 때 돈 벌어 집 장만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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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키호테’라고 했어요. 양복점을 하다가 지물포로 바꾼다니까 얼마나 엉뚱해 보였겠어요.”

 예일 인테리어는 중앙시장 북쪽 광장 앞 예전 충청은행 자리에 있다. 유흥준(58·사진)씨는 21년 전 예일 양복점에서 예일 인테리어로 간판을 바꿨다. 양복점은 제법 잘 나갔지만 쏟아져 나오는 기성복 시장에 맞서긴 힘들었다. 12년을 운영해 온 양복점을 접을 때는 갈등이 많았다. 목이 좋으니 세탁소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권유가 많았지만, 같은 옷을 만져도 고급 양복점을 했던 터라 세탁소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YWCA에서 무료로 도배를 배우면서 인테리어 업종으로 전업하는 기회가 됐다.

 지금이야 인테리어라고 하지만 그때는 ‘지물포’라 불리는 평범한 장판 집이었다. 새로 뜨는 업종이라 전망이 있을 거라 생각해 무턱대고 시작했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이 문제였다. 장사를 하면서도 단가를 몰라 견적을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일이 허다했다. 처음 1~2년은 욕도 많이 먹고 손님을 놓치기 일쑤였다.

 “하루는 술을 잔뜩 먹고 반성문을 쓰듯 제가 했던 실수를 하나하나 공책에 적어 봤어요. 그랬더니 잘못 해 온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멋모르고 시작한 일의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구나 싶었죠.”

 조금씩 일이 익숙해질 무렵 행운이 찾아 왔다. 천안시 쌍용동에 아파트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인테리어 일은 승승장구하며 호황을 누렸고 집도 장만했다.

 이제는 단골도 많아졌다. 단순한 도배와 장판만 해서는 손님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5년 동안 인테리어와 관련된 확장과 구조변경, 전등, 새시, 몰딩, 페인트, 버티컬을 배웠다. 근래엔 컴퓨터로 인테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일이 평면도를 그려 공책에 기록해 왔던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홈페이지 제작도 할 예정이다.

 유씨는 “33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고 일을 맡겨준 고객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씨의 낡은 공책에는 20년 넘은 단골들의 정보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문자서비스를 보내는 고객도 300~400명이 넘는다. 그는 “20여 년 전 반성문을 쓰던 공책이 오랜 고객관리의 자산”이라며 활짝 웃었다. 문의 04-551-3259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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