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만 죽으면…” 반도체 메이커들의 꿍꿍이속(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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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도체의 장래는 밝다

9월 중순 현재 채권단은 하이닉스에 대한 신규지원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이왕 지원하기로 했다면 빨리 할 일이다. 시간을 끌면 자금 규모만 늘어날 뿐이다. 죽지 않을 만큼만 주는 돈은 유동성 문제를 계속 야기시키다 종국에는 회생불능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필요한 자금보다 좀 더 넉넉히, 그리고 빨리 주지 않으면 안된다.

반도체는 타이밍의 예술이기 때문에 투자를 늦추면 칩 사이즈 축소 등 기술력에서 뒤져 원가를 낮출 수 없게 된다. 하이닉스는 올해 이미 미진한 투자로 인해 원가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이닉스를 축으로 해서 전개되는 반도체 서바이벌 게임이 어떤 양상으로 귀결될지를 예상하려면 반도체시장의 현황을 좀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간 319억달러 규모인 세계 D램 반도체시장의 국가별 점유율은 한국 38%, 일본 23%, 미국 19%, 유럽 9%, 대만 5%의 순이다. 업체별로 보면 상위 5개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1993년 36%에서 지난해에는 76%로 높아졌다. 시장이 갈수록 과점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D램 반도체의 63%가 컴퓨터 제작에 쓰이는데, 이 컴퓨터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 PC시장은 1985년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은 이미 PC 보급률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신규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컴퓨터의 핵심부품을 납품하며 성장해온 D램 반도체산업도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PC는 이제 웬만한 가정이면 다 보급돼 있는 TV와 같은 생필품 정도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PC보다 훨씬 먼저 보급되기 시작한 TV산업은 망해 없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LG전자·소니·마쓰시타·필립스 등 유수의 TV업체는 여전히 건재해 있다.

TV의 핵심부품인 브라운관을 만드는 삼성SDI·중화영관·도시바·필립스 등도 여전히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 비밀은 무엇인가? 바로 과점화다. 시장이 과점화되면 선두의 소수는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D램산업도 이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D램이 TV나 브라운관과 다른 점이 또 있다. PC는 성능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PC 판매 자체는 정체되더라도 메모리의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용량이 128메가에서 256메가로 상향되기 때문에 메모리는 두 자리 성장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D램의 소비처가 PC에 국한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휴대폰과 TV가 D램의 새로운 대형 소비자로 부상할 것이다. TV 시청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3세대 휴대폰은 ‘휴대용 PC’ 개념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분야가 D램 반도체의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르는 것이다.

TV도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최소 64메가에서 128메가의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디지털 시대로 바뀌고 있는데, 이 점 역시 D램시장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밝지만,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D램 경기의 하강국면은 최근 15년만의 최악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불황의 끝은 있게 마련이다.현재의 불황은 반도체산업의 속성상 수요 회복이 아니면 공급 축소의 과정을 거쳐 짧으면 1년, 길어도 2년 반 이내에 끝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7월 들어 경기침체가 더 심화되자 장기불황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불황 국면은 폭락의 정도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회복의 양상도 그에 어울리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향후 반도체 경기의 회복세는 장기불황 이후의 느린 회복세인 L자형보다 다소 빠른 U자 모양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활발하게 진행되는 반도체업계의 구조조정


예상을 뛰어넘는 급속한 경기하락은 업계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현재와 같이 변동비용을 밑도는 가격체제에서는 어떤 업체도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급속한 구조조정이 행해질 경우 경기 회복세도 훨씬 탄력을 받아 U자형보다 더 빠른 V자형 상승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정보기술(IT) 분야의 과잉재고를 고려할 때 D램의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IT는 굴뚝산업과 다르다. IT는 철강이나 화학 등 전통산업과 달리 제품 자체의 라이프 사이클보다 기술의 진부화(陳腐化)에 의해 제품의 수명이 결정된다. D램 반도체의 전방산업인 컴퓨터나 휴대폰 등은 3개월간 개발하고 3개월간 양산해 3개월간 판매되는 속성이 있다. 제품의 수명이 길어야 1년이라는 얘기다. 생산된 지 1년이 지나면 기술의 진부화로 인해 대손(貸損)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잉재고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 과정에서 빠른 구조조정이 나타난다.

현재의 반도체 경기가 침체국면을 벗어나는 계기는 PC시장의 회복 등 수요 측면보다 구조조정 압박 등 공급 측면에서 생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D램 역사상 가장 깊은 불황이었던 1985년에는 세계 1위의 반도체업체이던 인텔이 D램사업을 포기하면서 V자형의 급속한 회복세로 돌아선 적이 있다.
지난 1995년 D램 호황기 때는 모두 26개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1996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불황기에는 일본과 미국의 업체들이 손을 들고 시장을 떠나면서 상위 6개사가 전체 시장의 79%를 점하는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6조원이라는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주식시장에서는 거대기업 한두개가 화끈하게 공장 문을 닫아버리는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기대하지만,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도체업계의 구조조정은 적자폭을 견디지 못하는 업체 순으로 64메가, 128메가 생산라인별로 공장 문을 닫아 공급압박을 줄이는 쪽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64메가에서 원가를 못맞추는 하이닉스와 일본 도시바사가 64메가 라인을 접었다. 이 바람에 60~70센트에 거래되던 64메가D램의 현물가격이 1달러를 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기대되는 ‘살아남은 자들의 축제’

반도체 구조조정의 다음 차례는 128메가 라인이 될 것이다. 9월 중순 현재 256메가 D램은 128메가보다 17% 정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 4분기에 가면 256메가의 가격이 128메가 2개 값보다 낮아지는 ‘비트 크로스’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128메가 라인을 접는 회사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시장구도도 자연스럽게 256메가를 양산하는 상위 3~4개사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향후 D램 시장은 차세대 제품 양산에 필요한 설비투자 능력이 있는 3~4개 업체로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56메가 제품을 양산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려면 라인당 25억달러가 필요하다. 연간 매출액이 25억달러 이상인 회사는 삼성전자·마이크론·하이닉스·인피니온 정도에 불과하다. 매출액보다 더 큰 투자를 하는 간 큰 회사는 이제 D램업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도체 불황기가 시작되면 가격 폭락→적자 발생→감산 논의→덤핑 제소→가격 회복→경기 회복의 패턴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을 근거로 최근 D램 업계의 동향을 살펴 보면 ‘불황의 터널 끝’을 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이닉스·NEC·도시바 등이 이미 감산에 돌입했고 적자를 견디지 못한 대만 업체들도 감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생산라인을 새로 건설한 업체가 없다.
상위 업체의 구조조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반도체 경기의 바닥에서는 업체간 인수합병이 항상 나타난다. 지난번의 하강 국면에서는 일본의 하위권 업체와 미국의 TI사, 한국의 LG가 구조조정당했다. 1999년에는 LG와 현대가 합병했고, NEC와 히타치가 합작회사를 만들면서 경기침체가 끝났다.

현재는 D램업계의 6위 주자인 일본 도시바가 메모리사업의 철수를 검토중이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D램에서의 경쟁력을 잃어, 지금은 D램 분야에서 매출액이 25억달러를 넘는 업체가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매출액보다 큰 투자를 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합작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도시바의 메모리 부문의 인수자로는 삼성전자와 독일의 인피니온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도시바와 인피니온이 정리되고 하이닉스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도시바의 메모리사업 철수는 인수자가 삼성이든 인피니온이든 상관없이 D램 경기침체의 바닥을 알리는 신호로서의 의미가 있다.

최근 미국 마이크론사 대변인은 한국·일본·대만 등의 D램업체에 대한 덤핑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경기불황시에는 늘 덤핑제소를 통해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살아남았다. 1986년에는 일본 반도체를, 1992년에는 한국 반도체업체를 각각 걸고 넘어진 전력이 있다.제조원가를 밑도는 현재 D램 가격을 보면 덤핑제소는 예고된 수순이다. 단기적으로 덤핑제소는 업계의 악재지만, 크게 보면 이것 역시 ‘불황의 터널 끝’을 알리는 신호다. 덤핑에 걸리면 자동적으로 가격인상과 감산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요측면에서도 상황 개선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D램의 최대 수요처였던 PC가 지금은 성장 정체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내년부터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D램 가격이 단기간에 폭락한 것은 업계와 주주에게는 악재이지만 비관할 일만은 아니다. D램 가격 폭락은 2~3분기 뒤에는 수요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PC업체는 메모리 가격이 5분의 1토막이 났기 때문에 기존의 128메가 대신 256메가를 써도 원가부담이 없다. 성능 개선을 통한 신규수요 창출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현재 공급과잉이 가장 심한 상태인 싱크로D램을 장착할 수 있는 값싼 펜티엄4용 브룩데일칩이 9월에 이미 등장했다. 10월에는 윈도 XP가, 12월에는 2GHz 이상의 고성능 펜티엄칩이 각각 등장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의 성능을 확인한 후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칩의 등장이 PC의 수요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보통 1~2분기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새로 선보일 제품의 메모리 장착률은 128메가에서 256메가로 높아지기 때문에 올 4분기에 가면 PC의 판매는 정체해도 D램의 수요는 바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경기 하락의 모멘텀을 제공했던 유가는 2001년 들어서면서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인하되고 있다. 1945년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친 미국 경기 사이클 가운데 경기하강 국면은 평균 11개월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인하와 반도체 경기 반등 사이에는 1년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 이러한 제반 여건을 종합해 보면, 현재 진행중인 D램의 경기침체는 1년 6개월 정도 진행되다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경기는 올 3분기 또는 4분기에 바닥을 치고 내년 5월쯤이면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심장부에 테러공격을 받은 미국이 그에 대한 보복공격을 감행할 경우 국제유가 상승으로 미국의 경기침체의 가속화와 그에 따른 IT와 반도체의 불황 심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 테러사건은 미국의 첨단 IT장비의 무력함에 대한 성찰, 상당한 양의 정보의 유실에 대한 자각 등으로 이어져 IT산업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이번 테러사건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미국 정부는 고단위의 경제회생 정책을 쓸 가능성이 있고, 여타 선·후진국도 모두 동조해 전세계가 동시에 경기진작책을 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부시 행정부 들어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IT산업 육성책이나 지원책이 나온다면 반도체 경기가 15년내 최악의 상황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빛과 그림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IT산업과 반도체의 경기불황은 15년만에 최악이다. 이것은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질 여지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세계 D램시장의 올 7월 매출 합계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선에 그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불황이 더 깊어지면 다소 엉거주춤하고 있는 D업계의 구조조정이 더 가속화될 것이고, 이것이 거꾸로 경기회복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에게는 대박이 기다리고 있다. 안팎의 다양한 변수 속에서 진행되는 지금의 생존게임의 한가운데 세계 반도체시장의 1위인 삼성전자와 3위인 하이닉스가 서 있다.경기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1위에게는 큰 걱정이 없다. 호황 때는 떼돈을 벌어서 좋고, 불황 때는 좋은 시절에 벌어놓은 돈으로 먹고살면 되기 때문이다. 후발업체들끼리 치고받다가 몇몇이 쓰러져 나가면서 불황이 끝나고, 그렇게 시장이 교통정리된 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먹거리를 챙길 수 있는 것도 1위의 여유다.

따라서 불황기를 맞아 1위 업체가 얘기하는 투자 축소니 감원이니 하는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것은 ‘불황이 이토록 깊은가’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지만, 실상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 삼성전자의 모습이 생사의 기로에 선 하이닉스의 처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정점일 때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15~18%를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1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최근 8년만의 최저치다. 그러나 2003년 정도로 예상되는 차기 경기 정점 때가 되면 하이닉스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반도체는 다시 한번 한국경제의 주름살을 펴주는 기쁨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D램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한번 시장의 패권을 잡으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강자로 군림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9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가 이 시장에서 확실히 패권을 잡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5년 후면 이 자리를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장래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메모리 위주인 우리 반도체산업은 이미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메모리업계도 이제는 자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없으면 문제가 생기는 시점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아이템으로 장사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비메모리 분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메모리 분야에서 우리보다 10여년 앞서 있는 일본이 아직까지도 비메모리 분야에서 제대로 명함을 못내밀고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비메모리 분야로의 전환은 ‘남북통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업계의 평가도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경쟁력이 있는 데서 큰돈을 벌어 미래의 수종(樹種)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중심으로 과점화돼가는 메모리시장에서 과점으로 인한 이익을 충분히 누리면서 돈이 축적되면, 그때 가서 본격적으로 비메모리로 뛰어드는 것이 순서다. 섣부른 메모리 포기와 비메모리 육성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외국인 지분율 하향 노력 필요

우리는 삼성전자를 대한민국 기업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외국인이 56%의 지분을 가진 ‘외국인기업’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하이닉스를 우리가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부채는 우리가 떠안고 ‘클린 컴퍼니’를 만들어 외국에 바겐세일이라도 해버린다면, 우리는 반도체경기 호황때 떼돈을 벌더라도 이익은 외국에 넘기고 인건비밖에는 먹을 것이 없어진다.

외국인들은 이번 D램 경기 하강속도가 너무 빨랐던 데다 조(兆)단위였던 삼성전자의 이익 규모의 마술에 걸려 삼성전자 주식을 팔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면 다음번 경기 정점 때도 외국인들은 지금처럼 56%의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수호천사가 아니라 수익률을 좇는 하이에나다.

경기하락이 예상되면 주식을 팔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일거에 삼성전자에서 손을 뗀다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1985년 일본 반도체산업이 대불황을 겪은 직후 외국인 지분율은 최호황기였던 1980년 초반에 비해 66%나 줄어들었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표 반도체기업 삼성전자도 과도한 외국인 지분을 낮추는 일에 더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성전자는 매년 주주총회를 10여 시간 이상 진행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반도체의 과실(果實)을 우리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분율이 낮고 투자여력도 적다는 이유로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홀대하는 자세도 개선돼야 한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더 열심히 기업 내용을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업정보를 외국인에게 먼저 알리고 국내 기관에는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전병서 대우증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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