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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은 현실에 졌어” 빤한 결혼 얘기 같은데 계속 끌리는 이유는 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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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결혼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다룬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정소민(왼쪽)이 단짝친구 앞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월·화 밤 9시50분)가 화제다. 톱스타 하나 없이 오직 대본과 연출의 힘만으로 깔끔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리얼리티와 디테일의 승리라는 평이다. 열성적인 마니아층도 낳고 있다.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우리 시대 당당한 여성상을 제시했던 김윤철PD의 탄탄한 연출과 ‘사랑과 전쟁’으로 내공을 다진 하명희 작가의 호흡이 시너지를 낸다는 분석이다.

 결혼을 앞둔 혜윤(정소민)·정훈(성준), 이혼위기의 언니 혜진(정애연)·도현(김성민), 중년커플 이모 들래(최화정)·민호(김진수), 결혼은 비즈니스라고 외치는 기중(김영광) 등을 통해 이 시대 연애, 결혼, 이혼에 대한 생생한 풍속도를 보여준다. 결혼을 앞둔 젊은층은 물론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중·장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우결수’의 매력을 살펴본다.

중년의 닭살 커플 김진수(왼쪽)·최화정.

 ①리얼리티의 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성이다. 로맨스물의 판타지 대신 상견례, 혼수와 예물, 집구하기 등 결혼 준비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갈등과 에피소드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혜윤·정훈 커플은 결국 양가의 기싸움, 계층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 못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언니 혜진 부부의 이혼소송은 전쟁처럼 살벌하다. 세밀한 심리묘사와 경쾌한 감각도 강점이다. 자칫 칙칙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밝게 풀어냈다.

 ②살아있는 캐릭터

주·조연을 망라하고 캐릭터들이 생생하다. 현실주의자인 엄마 들자(이미숙)는 얼핏 속물로만 보이지만 애정을 타산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두 번이나 결혼하고도 습관적 외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부 도현마저 빤한 악역의 도식에서 벗어나 있다. 친구 애인과 얽히는 혜윤·정훈·동비(한그루)의 삼각관계 역시 색다르다.

 모두 신인급인 주인공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정소민은 전작 ‘장난스러운 키스’에서의 ‘발 연기’ 논란을 털어냈다. 신예 성준 또한 다소 헐렁하지만 착한 심성의 정훈 역을 호감가게 그려냈다. 정애연·김영광 등도 신인답지 않다. 배우에게서 살아있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연출자의 역량이라는 분석이다. 싸구려 화장을 하고 극성 엄마를 연기한 이미숙의 연기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평을 받는다.

 ③입에 붙는 대사

오랜 기간 ‘사랑과 전쟁’에 참여했던 작가의 관록이 명대사를 낳고 있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재치 있게 찌르고 있다. 공감의 폭이 크다는 얘기다.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은 과거 내가 잘못 산 것의 대가다.” (남의 가정을 깨고 유부남과 결혼했다가 다시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혜진), “아빨 원망해. 아빠 DNA 중 여자에 대한 충성심이 나한테 온 거 같아.”(정훈이 애인에게 꼼짝 못한다며 자신을 타박하는 엄마에게), “이들래씬 아직 미개봉 상태라 저승에 갈 수가 없어요.”(50살 골드미스 들래가 처녀인 것을 빗대어 하는 말) 등이다.

 ④3무(無)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폐해 3가지가 없다. 살인적 스케줄을 부르는 쪽대본과 눈살 찌푸려지는 PPL(간접광고), 극의 흐름을 깰 정도로 감상적인 OST다.

 또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인물이 나오지만, 이른바 갈 데까지 가는 막장 요소가 없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비결이다.

 드라마평론가 공희정씨는 “현실적이고 세태 고발적이지만 동시에 경쾌한 감각을 잃지 않아 흥미롭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결수’의 명대사

“잘난 아들은 나라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 아들이고, 신용불량 아들은 엄마 아들이라더니” -아들 정훈(성준)의 결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은경(선우은숙).

“우리 사랑은 현실에 졌어. 우리 사랑은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후진 사람으로 만들어. 미안해.” -혜윤(정소민)이 정훈에게 결별을 선언하며.

“ 혹시 너희 어머니 장사하시는 분이라 결혼두 장사라 생각하시는 거 아니니? 결혼 시키는 데두 많이 이문 남기는 게 목적이시니? 이건 꼭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인드가 문제야.” -은경이 예단으로 갈등을 빚은 예비 며느리 혜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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