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면 르꼬르동 블루 문 열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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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하며 단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정은정씨. [김성룡 기자]

르꼬르동 블루 요리학교 수석 졸업, 휴 헤프너 플레이보이 회장이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파티를 즐기는 ‘플레이보이 맨션’ 전속 셰프, 미 유명 음식프로그램 스타일리스트.

 재미동포 요리사 정은정(42·여)씨의 화려한 이력이다. 그러나 정씨는 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공도 유아교육과였다. 1996년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간 정씨는 캘리포니아주의 팔로스버디스에서 살았다. 이웃 주민들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길 즐겼다. 그러면 늘 “세상에서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그 중 한 명이 정씨에게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2002년, 그의 도전이 시작됐다.

 정씨는 집 근처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꼬르동 블루 패서디나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엄마 나가지 마”라고 떼를 쓰는 여섯 살 아들을 재운 뒤 매일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1년 반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교 문을 처음 연 사람이 바로 정씨였다. 악착같이 열심히 공부한 덕에 ‘수석 졸업’의 영예도 안았다.

 정씨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교수가 그를 ‘플레이보이 맨션’ 전속 요리사로 추천했다. 정씨는 “서른 넘어서 뒤늦게 시작한 내겐 꿈만 같은 기회였다”라고 밝혔다.

 정씨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미국의 유명 요리사 수잔 고인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LA에 있는 ‘A.O.C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은 생각한 것보다 고됐다. 오전 1시에 퇴근해 잠시 눈을 붙인 뒤 오전 3시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10~15시간을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한 채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느라 요로결석에 걸리기도 했다. 정씨는 학교에서처럼 늘 제일 먼저 출근해 그릇을 닦고 메뉴를 준비했다. 정씨의 타고난 성실성은 ‘푸드 네트워크’라는 방송사에까지 알려졌다.

 정씨는 미국 최고 셰프로 꼽히는 타일러 플로렌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푸드 911’에 전속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해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2006년엔 레스토랑 전문 컨설팅 업체 ‘비 딜리셔스 푸드 랩’을 세웠다. 현재 미국 서부 지역의 여러 레스토랑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정씨는 “꿈이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재능을 발견하면 꼭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도 내 삶은 꿈 같지만, 앞으로도 늘 꿈꾸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오는 16일 오전 9시30분 JTBC ‘힘있는 이야기쇼’에도 출연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전한다.

송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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