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쑥쑥] 과학책 80%가 외국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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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 아파트의 아이들은 매미채를 들고 다녔다. 그 아이들 곁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아이들은 매미소리가 종류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까?

참매미는 아침나절에 잘 울고 말매미는 하루 종일 울어댄다는 걸 알까?

이럴 때 '매미 책' 을 보여주면 좋아할 텐데, 관심이 가득할 때 매미 책을 보여주면 매미의 한살이와 생태를 더 잘 이해할 텐데….

무엇보다 삶에서 생긴 호기심을 '책을 통해' 풀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될 듯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낱권으로 살 수 있는 '매미 책' 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미안해졌다.

삭막한 도심에서 아이들이 그나마 가까이 자연을 경험하는 순간인데, 그 경험을 자연에 대한 이해로 넓혀줄 책이 없다니 아쉬운 것이다.

책은 아이들의 삶이 담겨있을 때 재미도 있고 보탬도 된다. 과학 책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자연, 일상에서 보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 책이 좋은 책이다. 그런 까닭에 과학 책도 우리나라 책을 우선 보여주라고 권한다. 하지만 어린이 과학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의 80%는 외국 책이다.

오래 전에 영국 덜링 킨더슬리(DK) 출판사에서 나온 나무 관련 책을 들고 학자를 찾아간 적이 있다. 대뜸 "영국의 나무들이군요" 한다.

우연히도 그는 영국에서 공부한 교수였다. 영국 책에 영국의 자연이 담기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는 외국의 큰 출판사들이 다국적의 지식책을 내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세계에 저작권을 팔 계획으로 출판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모습도 여러 인종이고 세계의 생물들을 다양하게 넣는다.

마치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처럼 세계 어린이의 입맛에 맞춘 느낌이다. 하지만 한국이란 나라의 자연.생물들은 그 속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과학 책도 동화책처럼 우리나라 책과 외국 책을 고르게 읽을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외국 책만 많이 읽다보면 책에 있는 내용 따로, 자신이 사는 삶 따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이 주어져야 한다' 는 말은 연령이나 책의 수준만 고려한 말이 아니다.

아이가 주변의 사물에 대해 관심 가질 때 그 관심에 답해주는 책이 필요하다는 뜻도 된다. 우리나라 강, 우리나라 숲에 대한 책이 필요하다. 실험관찰 책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려면 도구와 재료가 우리나라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의 삶과 경험을 담은 토종 과학책을 더 많이 출판해야 하고 부모들은 우리 책부터 보여주려 해야 한다.

여름이 끝나간다.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아이들은 잠자리를 쫓는다. 아이들은 그 많던 매미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이렇게 많은 잠자리는 또 어디에서 왔나 궁금하지 않을까□ 잠자리 책을 찾아본다.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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