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대자보’ 차 꽁무니로 보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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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케네디와 오바마의 범퍼스티커

며칠 전 서울대 조국 교수가 ‘투표하라 1219’라고 쓰인 차량용 스티커 디자인을 트위터(SNS 사이트)에 공개했다. 19일 대통령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였다. 왜 하필 차량용 스티커였을까. 미국 철학자 잭 보웬은 신간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민음인)에서 “트위터 이전에 범퍼스티커가 있었다”며 “한 줄의 범퍼스티커는 천 마디 말을 대신한다”고 썼다.

 자동차 범퍼나 뒷유리에 붙이는 스티커는 불특정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움직이는 광고판이자 대자보이며, 차 주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액세서리다. 저자는 1940년대부터 미국에서 통용됐던 150여 장의 범퍼스티커에서 철학 읽기를 제안한다. 각종 사회 이슈, 종교적 신념, 개인적 취향, 단순한 말장난 등이 담긴 스티커 문구를 실마리 삼아 철학적 사상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라는 문구를 심리학의 ‘행동편향’ 이론을 들어 설명한다. 이 문구는 사고를 예방하려고 붙였지만, 실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믿는 심리가 이런 오류를 낫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범퍼스티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선 정치참여의 도구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의 슬로건인 ‘희망과 변화(HOPE AND CHANGE)’가 스티커로 제작돼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는 것이다.

 하찮은 스티커 하나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은 책 전반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유머와 위트를 곁들인 서술방식은 국내 대중철학자들도 참고할 만하다. ‘책 읽는 사람은 섹시하다(READING IS SEXY)’라는 스티커를 소개하면서 ‘그러니 계속 읽어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그만큼 섹시해질 테니까’(86쪽)라고 쓰는 재치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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