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92) 쑹메이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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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칭링은 장제스를 싫어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남편 쑨원에게 충성스럽고 용감한 군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생활이 문란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쑨원으로부터 장제스가 동생 쑹메이링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쑹칭링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고향에 부인이 둘씩이나 있고, 화류계에서 날을 지새우는 사람이다. 성병환자라는 소문도 있더라.” 쑨원은 여자문제에 관대했다. 처음 듣는 얘기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황금에도 적색이 섞여있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족한 점은 있지만, 장제스는 인재다. 병은 고치면 된다.”

며칠 후 장제스가 쑨원을 찾아왔다. “고향에 있는 처자와 이혼만 하면 뭐합니까. 아직 배우자를 못 구했습니다. 부인과 의논해 보셨나요.” 2개월 전 동거를 시작한 여자도 곧 정리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쑨원은 잠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한동안 듣기만 하던 쑹칭링이 입을 열었다. “메이링은 류지원이라는 약혼자가 있다. 장제스의 청혼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지금 상하이에는 메이링을 힐끔거리는 남자가 파리떼보다 더 많다” 쑨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동생에게 얘기라도 한번 해봐라. 본인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 쑹칭링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다. 그 애가 죽는 모습은 볼지언정, 정부(情婦)가 열 명도 넘는 남자와 결혼하는 꼴은 못 보겠다”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생각하기도 싫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쑨원은 장제스에게 반년만 기다리라고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여자 마음 돌리려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 일단 시간을 번 쑨원은 “처제가 직접 결정하게 하자”며 쑹칭링을 설득했다.

1923년 8월, 쑹메이링은 “광저우(廣州)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번 다녀가라”는 언니 부부의 편지를 받았다. 광저우에 도착한 쑹메이링은 형부 쑨원이 공항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날 따라 비가 내렸다. 저녁도 함께했다. 총명한 쑹메이링은 뭔가 말하기 힘든, 중요한 일이 있다는 예감이 들었던지 대놓고 물었다. “형부와 언니는 바쁜 분들이다. 혼자 여기저기 다닐 테니 신경 쓰지 마라. 혹시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해라.”

쑹칭링이 눈짓을 하자 쑨원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처제도 적은 나이가 아니다.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 부부는 처제의 결혼상대자를 고르느라 노심초사했다. 최근에 와서야 그간 물색한 보람이 있었다. 내 부하이며 현재 대원수부 참모장으로 있는 장제스라는 사람이다. 지난 겨울 상하이에서 얼핏 본적이 있다고 들었다.” 쓸데없는 얘기 같았지만 “건강하고 그 어떤 병에도 걸린 적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쑨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쑹칭링이 나섰다. “네 형부는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절대 반대다. 우리 의견은 참고만 해라. 당장 결정할 필요 없다.” 쑹메이링은 황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던 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상이 가물가물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쑹메이링은 광저우에 1개월간 머물렀다. 상하이로 떠나는 날 언니 부부에게 말했다. “사회 봉사나 하면서 살겠다. 장제스에 관한 일은 다음에 만나면 얘기하자. 서로 안부 편지나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쑨원은 그 정도면 됐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장제스도 흡족해 했다. 소련과 연합한 쑨원이 군관학교 설립을 준비하자 소련행을 자청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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