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나 변호나 승부욕과 집중력 싸움이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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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변호사는 “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웃을 틈이 없는데, 퀴즈 프로 출연이 활력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지난달 23일 방영된 MBC ‘최강연승 퀴즈쇼Q’에서 국내 퀴즈쇼 사상 최고 액수 상금의 주인공이 나왔다. 7연승을 거둔 임윤선(34) 변호사다. 임 변호사는 상금으로 3억원을 받았다. 1회 예선에서 동료 변호사들과 팀을 이뤄 출전, 탈락의 쓴잔을 마셨던 그는 10월 9회에 재도전해 퀴즈 여왕에 등극했다. 단아한 외모와 달리 일단 퀴즈가 시작되면 뿜어내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이 화제가 됐다. 문제가 출제되자마자 버튼을 누르는 ‘빛의 속도’에 시청자들은 “퀴즈쇼계의 리오넬 메시”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도전자들은 “지옥에서 올라온 변호사”라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임 변호사가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 중인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민에서 그를 만났다.

-7연승의 비결이 궁금하다.
“힘들었다. 10살 넘게 어린 도전자들 때문에 심적으로 위축감이 상당했다. ‘운동도 체급별로 하는데 퀴즈도 연령별로 나눠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작진한테 불평도 했다. 특히 과학고 출신 참가자들의 수리 문제 풀이 능력엔 당할 수가 없었다. 어휘와 상식 분야가 그나마 자신 있었다. 승리를 거듭할수록 마음도 안정되고 요령이 생겨 도전자들보다 유리했던 것 같다. 가령 답을 완전히 구하고 나서 버튼을 누르면 늦는다. 오른손으로 문제를 풀면서 왼손은 버튼 위에 얹고 있었다. 퀴즈나 변호나 승부욕과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서 다른 도전자들보다 강했던 것 같다.”

-어떻게 준비했나.
“퀴즈 프로에 나오는 유형의 문제들을 모은 문제집이 시중에 있다. 종류별로 15권을 사서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봤다. 똑같은 문제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잠자던 뇌를 깨우는 데는 꽤 도움이 됐다. 찍기도 하고 맞히기도 했다. 타고난 퀴즈왕은 절대 아니다. 준비를 안 했다면 7연승은 꿈도 못 꿨을 거다.”

-퀴즈 프로에 참가한 경험이 있나.
“7년 전 사법고시 2차 끝나고 KBS ‘우리말 겨루기’에 나갔다. 시험 직후라 책을 들여다보기가 너무 싫어서 아무 준비 없이 참가했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보니 다른 참가자들은 너덜너덜해진 사전과 문제집을 들고 왔더라. 한 문제 맞히고 탈락했다. 너무 창피해서 다시는 퀴즈 프로에 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왜 다시 나갔나.
“제작진 부탁을 받아 변호사팀 섭외만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결원이 생기다 보니 결국 끼게 됐다. ‘평균 아이큐 136을 자랑하는 팀’이라고 방송에 소개됐는데 변호사팀이 1회에서 너무 못했다. 명예 회복 차원에서 9회에 재도전했다.”

-‘얼짱 변호사’라고 인터넷에서 관심이 많았다.
“내가 충주 출신인데 충주시장님이 7연승 축하 화분을 보내주셨다.(웃음)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의뢰인들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퀴즈쇼 잘 봤다는 인사를 꽤 받았다.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방송 이미지가 너무 좋게만 나와 부담도 됐다. 방송에선 편집이 많이 돼 내가 마치 카리스마 강하고 머리 엄청나게 좋은 완벽한 사람처럼 비쳤다. 가령 ‘기아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를 맞히는 문제가 그랬다. 방송에선 내가 정답을 바로 맞힌 걸로 나오지만 녹화 땐 잘 몰라서 수도 없이 틀렸다. 5연승 때(11월 9일 방송)는 다섯 문제 푸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사실 진짜 내 모습은 잘 웃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사람들이 날 완벽한 이미지로만 보고 좋아하는 데 마음이 편친 않았다.”

-다시 퀴즈 프로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퀴즈 프로에 또 나가진 않을 것 같다. 두 달간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녹화에 지각하는 악몽도 여러 번 꿨다. 7연승을 거둔 날은 아침 한 끼 먹은 게 하루 종일 얹힐 정도로 긴장이 심했다. 심장 근육이 오그라들어 뭉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의뢰인들이 ‘퀴즈 푸느라 우리 일엔 소홀한 거 아닌가’ 걱정할까봐 신경도 쓰였다. 변호사는 늘 사실 관계를 엄격하게 따져야 하고 맡는 일의 성격상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런 빡빡한 일상의 작은 활력소가 된 걸로 만족한다.”

사실 임 변호사는 퀴즈왕이 되기 전부터 ‘방송인’이었다. 2009년 SBS 예능 프로 ‘골드미스 다이어리’에 출연해 개그맨 노홍철과 맞선을 본 적도 있고, 지난해엔 케이블 채널 tvN 시사토크쇼 ‘브런치’에서 MC 백지연, 배우 문정희와 공동 진행을 맡기도 했다.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보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방송 출연 기회가 오는 게 감사해서 응했던 출연”이었다. 최근에도 패널 섭외가 종종 들어온다. 대학(서울대 불어교육과) 시절 연극 동아리(총연극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터라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는 편이다. 원래는 언론사 지망생이었다. 부조리한 걸 보면 욱하거나 어렸을 때 어른이 뭘 말하면 ‘예’보다는 ‘왜?’라고 반문했던 성격이었다. 사시를 본 건 법조계에 있는 외삼촌의 권유 때문이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법무법인 지평지성에서 3년, 지금의 회사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5년차 변호사인 그에게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물었다.

그는 지난해 맡았던 일명 ‘신림동 두 살배기 살인사건’을 꼽았다. 두 살배기 아이가 집에서 죽었는데 뚜렷한 증거 없이 엄마의 증언만으로 아빠가 살인범으로 몰린 사건이었다. 우는 아이를 아빠가 때리고 밟아 장 파열로 사망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사유였다. 1심에서 피고는 징역 12년을 받았고 임 변호사는 이걸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로 뒤집었다.

“뉴스에서 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느냐’고 욕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내가 맡게 될 줄은 몰랐다. 기업 자문이 전공 분야고 형사사건이라곤 그전에 3건밖에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막했다. 게다가 의뢰인은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소위 ‘나쁜 놈’이었다. 죄가 있든 없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도 의뢰인의 무죄를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사건은 솔직히 괴롭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의뢰인이 사는 신림동 빌라촌 일대와 죽은 아이가 실려 갔던 병원 등 발로 뛸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다녔다. 동네 수퍼 주인과 의사·간호사 등 닥치는 대로 만나 진술을 받았다.

의뢰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와 증언이 계속 나왔다. “항소이유서를 200장 가까이 썼다. 내 능력이 부족해 한 사람 인생이 망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두려웠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법조계 선배가 ‘담당 사건에 너무 감정 이입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2심 무죄 선고를 받았을 때 의뢰인도 울고 나도 울었다. 앞으로 많은 사건을 맡겠지만 평생 절대 잊을 수 없을 사건일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재판을 남겨두고 있다.

미혼인 임 변호사는 7연승 직후 “상금 중 약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독거노인시설·아동복지단체 등에 기부하겠다”고 밝혀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살면서 얻은 교훈은 노력에 비해 너무 많은 걸 얻으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3억원은 큰돈이지만 내 인생을 바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면 거기에 쓰는 게 맞다”는 게 이유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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