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회사 "팀워크 향상보다 개인 숭배 초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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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인터넷 회사들은 상하구조가 없는 직장이라는 개념을 유행시켰다. 여기서는 직함이나 방도 없고, 말단직원이라도 최고경영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많은 경영 전문가들은 서열의 종언을 예고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계층구조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거기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이 거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인 것 같다.

테네시州 밴더빌트大의 데이비드 오언스 교수는 캘리포니아州에 있는 한 첨단기술 회사의 4년치 e메일 3만통을 조사했다.

고위층은 높은 직함이나 요지의 집무실로 자신의 신분을 강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짧고 직설적이며 부주의하게 오·탈자를 남긴 e메일로 신분을 알렸다. 그들은 또 하급자의 e메일에는 뜸을 들여 답변하거나 아예 답장을 하지 않는 등 ‘메일은 내가 보낸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 이면에는 ‘내 시간은 소중하며 나 또한 존귀한 존재’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대조적으로 중하위 직원들은 상사의 눈에 띄기 위해 복잡한 논지를 전개하고 전문용어를 다수 섞어가며 몇 시간씩 공들여 장문의 e메일을 작성했다.

그들은 야근을 하지 않는 대신 사이버공간에서 밤샘하며 발신시각이 ‘오전 2시’라고 찍힌 e메일을 보냈다. 상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소띤 얼굴) 같은 이모티콘까지 동원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명백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직장내의 방임형 민주주의가 항상 주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오언스 연구팀은 다른 조사를 통해 비계층구조가 팀워크의 향상보다는 뛰어난 직원의 우상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모든 직원의 작업을 규정하고 인정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없었기 때문에 말단직원들은 사실상 발언권이 없었다.

대신 가장 적극적이고 목소리가 큰 직원들이 회의에서 독무대를 이루며 주목받았다. 오언스는 “성공은 집단보다는 개인숭배와 더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열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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