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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선 때문에…T-50 조종사 영결식 본 정비사 상관, 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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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 정비 담당 부사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8개월 난 딸을 둔 30대 공군 조종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정비 부실에 책임을 느낀 감독관은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의 원인이 된 건 10cm 길이의 가느다란 차단선 하나였다. 강원도 횡성군 내지리 인근 야산에서 11월 15일 오전 추락한 블랙이글 항공기(T-50B·사진) 사고 조사 결과다.

 30일 공군에 따르면 계기판 담당 정비사인 김모(32) 중사는 추락사고 사흘 전 항공기의 상승·하강을 제어하는 피치(pitch) 조종 계통을 정비하면서 이 장치에 꽂았던 차단선을 뽑지 않았다.

통상 항공기 이륙 전 피치 조종 계통의 정확한 계측을 위해 가는 철사 굵기인 길이 10㎝의 차단선을 꼽아 시스템을 정지시킨 뒤 정비를 한다. 정비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이 차단선을 뽑아야 하는데도 과실로 뽑지 않은 것이다.

 사고 당시 블랙이글기는 제8전투비행단(강원도 원주기지)을 이륙해 상승하던 중 기수가 계속 하강하는 이상현상을 보였다. 조종사인 고(故) 김완희 소령(32·공사 51기)은 조종간을 최대로 당겨 상승자세를 유지하려 했으나 900m 상공에서 급격히 기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항공기는 이륙 후 1분38초 만에 추락했고, 김 소령은 350m 상공에서 비상탈출을 시도했지만 기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9초 만에 지상에 떨어져 순직한 것으로 사고조사단은 밝혔다. 목격자의 증언과 달리 공중 화재는 없었고 사고기의 엔진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등 기체 결함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공군은 설명했다.

 김 중사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임관한 김 중사는 12년 경력의 정비사이며, T-50 정비는 2년째다. 정비 감독관 김모(51) 준위는 사고 뒤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7일 기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준위는 부인과 자녀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여보,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줘. 정비 잘못으로 젊은 조종사가 숨지고 정비를 맡았던 후배들이 괴로워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썼다. 공군 관계자는 “사고 이틀 뒤 열린 김 소령의 영결식에 참석해 지난해 결혼한 부인과 어린 딸이 오열하는 모습을 본 뒤 후배 정비사를 관리·감독하는 데 따른 자책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준위는 평소 강직한 성격에 엔지니어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중단됐던 T-50 기종의 비행은 다음 달 초 재개된다. 공군은 유사한 사고 방지를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전에 정비 결함 인지시스템을 보완·개선하겠다고 했다.

◆T-50=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기술 제휴해 생산하는 초음속 국산 고등 훈련기다. 지난해엔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수출하기로 계약 했다. 경공격기로 개량할 수도 있는 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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