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똑똑한 조약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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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디오로도 출시된 영화 '섬 오브 올 피어스(The Sum of All Fears)'는 미국과 러시아가 신나치주의자들의 이간질로 핵전쟁에 돌입할 뻔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1980년 6월3일,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 브레진스키는 "2백20기의 미사일이 미국을 공격하려 한다"는 당직장교의 전화를 받았다. 잠시후 "포착된 미사일은 총 2천2백20기"라는 더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브레진스키가 막 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할 때 "뭔가 이상하다"는 세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이 사건은 누군가가 훈련용 테이프를 컴퓨터에 잘못 입력한 탓으로 밝혀졌다.

'섬 오브 피어스'에서 미.러 대통령은 상대방이 먼저 핵공격을 할 것이라고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자제력을 발휘했다. 그 배경에는 핵강국끼리의 '확실한 상호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MAD)'능력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04년부터 탄도탄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라"고 군에 지시했다. 이른 바 미사일방어(MD)계획이 실천에 옮겨지는 것이다.MD가 생각대로만 작동한다면 미국은 더이상 '공포의 균형'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그러나 그게 맘대로 될까.

적의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아군 미사일로 요격한다는 MD의 기본구상에 대해 적지않은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은데다 군비경쟁만 초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MIT대 종신교수인 물리학자 시어도어 포스톨이 대표적이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부정확성을 폭로해 유명해진 포스톨은 MD 추진론자들이 '교묘한 사기'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번 MD 이전에도 적 미사일을 우주에서 레이저로 요격하거나 '똑똑한 조약돌(Brilliant Pebbles)'로 불리는 소형 요격체 10만개로 격추한다는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미국 정치가와 군인들을 현혹시켰었다. 똑똑하다는 조약돌이 결국 '멍청한 조약돌'로 밝혀졌지만.('미사일 디펜스'.들녘)

아무리 9.11테러 피습의 공포가 작용했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MD를 강행하는 미국의 몸보신 욕심은 과해 보인다.코앞에 둔 북한 핵의 위협에 둔감해보이는 한국도 문제지만.

노재현 국제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