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차산업시대 서비스산업 강국이 되자] 1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0일 제주시민회관.

'제주 국제자유도시 추진계획' 을 제주도민에게 알리는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 참석한 지역주민들은 대부분 "국제자유도시는 제주도와 나라가 함께 사는 길" 이라는 전문가 주장에 귀를 귀울이기보다는 "감귤농장 대책부터 세우라" 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제주도를 외국인에게 팔려 하느냐" 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주민과의 합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법무법인 김&장의 한 국제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치권에선 국제자유도시.국제금융중심지 등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말한다. 우리가 자유도시를 선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설.사람.언어.법규.산업 등이 다 갖춰져야만 국제자유도시가 가능하다. 외국기업인들 중에는 한국서 사업을 하다가 소송을 해야 할 경우, 영어를 구사하는 판사 앞에서 영어로 된 법전을 놓고 재판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

◇ 내부 역량부터 키워야=인천대 홍철 총장은 "우리나라 곳곳을 국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해 제도.규제를 풀고, 인력도 양성하고, 인프라도 제공하는 등 여건을 조성하자" 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국토는 강대국이 수시로 왕래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 그리고 다리 주변엔 원래 장터가 선다. 그 장터는 물건을 사고 파는 중계무역의 장소, 상품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장소, 부수적으로는 금융.관광.회의를 위한 장소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엔 동북아의 경제주도권을 겨냥하는 국가.도시들이 많다. 중국(상하이), 대만(가오슝), 말레이시아(라부안), 일본(오키나와.오사카.고베), 싱가포르 등이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내부 역량부터 키워야 한다. 외국인.기업을 우리 국토에 끌어들이려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시스템 모두를 다른 차원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문제는 컨센서스다.

"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느냐" 는 반발을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 수단이기 때문이다" 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 잠재력은 있다=이영혁(한국항공대).엄태훈(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교수팀은 최근 한.중.일을 대상으로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서의 이점을 비교.평가했다.

23개 항목 각각을 3점 만점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은 53점, 일본은 50점, 중국은 35점으로 "한국이 중국보다는 월등히 유리하고 일본보다도 약간 앞선다" 는 결론이 나왔다.

이교수팀은 우리 정부의 정책투명성, 관료의 태도 항목을 최하점(1점)으로 평가한 반면 지리.경제적 위치, 공항능력, 컴퓨터.인터넷 등의 항목이 특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했다. 결국 제도.인력만 준비되면 동북아의 '제3자 물류산업' (기업이 물류를 철저히 아웃소싱하는 것)을 얼마든지 우리 것으로 키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 어물어물하다간 기회를 놓친다〓 "상하이항은 수심이 12m로 얕아 부산.광양항과 경쟁이 안된다. "

우리 정부.전문가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중국이 올 1월 상하이를 10년 안에 56선석(船席)규모의 동북아 최대 컨테이너 항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은 상하이 앞 바다의 섬들을 이용해 수십 15~30m의 대형 컨테이너 항만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육지와는 35㎞의 연륙교(도로.철도 겸용)로 연결한다.

우리 정부가 급해졌다. 부산.광양항을 동북아 중심항만으로 만든다는 꿈을 접어야 하느냐 아니냐를 결정해야할 판이다.

해양수산부는 이제 부산 신항건설을 1년 반 앞당기는 등 항만 건설계획을 수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도 마찬가지다.

단일건물로는 세계 최대인 영종도국제공항을 지었지만 국제자유도시는 말뿐이다. 그 사이 주변 도시들은 더욱 국제화돼 가고 있다.

특별취재팀=음성직.신혜경 전문위원, 이재광.정경민.신예리 기자 eums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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