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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국회|이봉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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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세상사가 온통 얽히고 얽혀서 삼 꺼풀처럼 실마리를 가려낼 수 없을 때 나는 꽃을 들여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옳고 나 혼자만 외톨로 남았을 때도 나는 꽃을 의지한다. 내가 가르친 제자가 외면하고 단하나 남은 친구마저 돌아 앉을 때 나는 꽃을 만진다. 한 지붕 밑에 사는 아들애와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도 꽃꽂이 책을 들여다 본다.
언제부터 생겨난 습관인지는 몰라도 꽃을 보거나 만지거나 하다못해 꽃 그림이라도 앞에 펴놓으면 마음이 후련하게 가라 앉는다. 그렇다고 나는 꽃 전문가도 아니다. 꽃을 기르는 기술도 없는가 하면 꽃꽂이 전문가도 아니다. 그야말로 어느 특정한 화초에 인이 박혀 꽃 없이는 잠시도 못 견디는 그런 중독자도 아니다. 어느 한가지 꽃에 만 애정을 쏟는다든가 아니면 그 형태나 빛깔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목련, 장미,「코스모스」, 그리고「튤립」에 간드러진 이름 없는 꽃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 그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꽃을 대하면 미를 찾아 이를 감상한다기 보다는 우선 안도감을 얻는다. 꽃은 마음의 여유를 준다. 꽃을 바라보면서 나만이 옳다고 펄펄 뛸 수도 없는가 하면 남은 틀렸다고 고집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꽃은 이런 경우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을 다스려주는 힘이 그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꽃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꽉 차 있을 것 같다. 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눈의 티보다 내 눈의 검은 점을 먼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라나라 국회의사당을 한번 꽃으로 꽉 채워 보았으면-. <이대 도서관장·교수>
▲편집자 주=「파한잡기」는 이면의 고정란입니다. 연구실의 여화, 생활인의 감상등 진지한 화제가 이 속에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10분을 추대하고 차례로 집필할 것입니다. 어느 기간이 지나면 필진은 바뀌게 됩니다. 집필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봉순(이대 도서관장) ▲정명환(불문학·서울대학 조교수) ▲윤형중(천주교 신부) ▲변선환(목사·이화여고 교목) ▲박래현(여류화가) ▲임천순 (실업가·성업공사 이사)▲박숙명(낙도교사·경남 통영군저도) ▲신지식(아동문학가) ▲이기백(사학·서강대 교수) ▲이장규 (의박·서울대 조교수) (원고 도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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