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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이읽기 BOOK] 원흉과 영웅 사이, 이토 히로부미를 다시 보다

    [깊이읽기 BOOK] 원흉과 영웅 사이, 이토 히로부미를 다시 보다

    이토 히로부미 이종각 지음 동아일보사 391쪽, 1만3000원 “경(卿)은 국가의 원로로서 혁혁한 훈공을 세워 그 이름이 일세에 풍미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근세의 4대

    중앙일보

    2010.05.07 20:08

  • 국보 돌사자상과 복제품, 화엄사에 함께 있게 될 까닭

    국보 돌사자상과 복제품, 화엄사에 함께 있게 될 까닭

    전남 구례 화엄사의 국보 35호 ‘사사자 삼층석탑’① 은 네 마리 사자가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이 중 서남측 사자 ② 를 1930년대 일제가 복제·반출했다가 진품처럼 일본 도쿄

    중앙일보

    2013.04.08 01:40

  • 쓸쓸한 세모…병상의「마지막 상궁」|구호미로 투병하는 김명길 할머니

    「마지막 상궁」-. 조선조의 영화와 비극을 한몸으로 산 순종비 윤씨외 시녀 김명길 할머니(92)가 다섯달째 병상에 누워 쓸쓸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병상을 지키는 사람은 역시 90

    중앙일보

    1983.12.26 00:00

  • [삶과 추억]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별세

    [삶과 추억]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별세

    ▶ 지난해 5월 2일 종묘 대제에서 역대 임금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는 황세손 이구씨. 1996년 귀국후 매년 이 행사를 주관해 왔으나 올해는 건강을 이유로 불참했다. [중앙포토]

    중앙일보

    2005.07.20 04:38

  •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당시 한국의 형편은 어떠하였던가? 제2차 세계대전의 말기 독·이 양국이 먼저 항복하고 일본이 혼자서 악전고투할 때 일본의 최강군이라는 만주의 관동군은 이미 대부분이 남방으로 이동해

    중앙일보

    1970.08.18 00:00

  • (114)해방에서 환국까지

    영친왕께 상서를 하고 본국에 와서 알아보아도 패스포드를 얻기는 매우 어렵겠다는 것을 우선 아시게 한 후 꼭 한달만에 동경에 돌아와 보니 영친왕 내외분은 이미 미국으로 떠나신 뒤였다

    중앙일보

    1970.09.17 00:00

  • 주사 민병기씨 통해 박정희 의장에 딱한 사정 호소

    영친옥의 한국을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중에서도 진명여고 이세정, 숙명여고 문남식, 양정고교 엄경빈씨 등 교장선생들의 노고와 정성이란 이만저

    중앙일보

    1970.10.10 00:00

  • (148)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전 일본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이 본 영친왕)이왕 전하 도전정순 이왕 전하는 명치30년(1897) 10월20일 어탄생, 이왕 조제 26대 이태 왕의 책7남자, 명치38년 왕세손에,

    중앙일보

    1970.10.29 00:00

  • 해방에서 환국까지

    평소에 별로 말이 없는 영친왕도 그날만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는 미나미(남) 총독 때의 창씨제도에도 찬성하지 않았소. 건공(이정공)의 일본귀화에도 반대하였는데 무엇이 좋아서 일

    중앙일보

    1970.09.23 00:00

  • (127)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4·19 혁명당시 필자는 서울에 있었는데 하루는 미국에 계신 영친 왕비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왔다. 내용은 오래간만에「뉴요크」에 와서 아들(구)내외의 신혼생활을 보고 매우 즐거웠다

    중앙일보

    1970.10.05 00:00

  • 영친왕 일주기 추도식

    의민 황태자 영친왕1주기 추도식이 5월1일 상오11시 창덕궁 대조전 앞뜰에서 열렸다. 구 왕실 최후의 황태자로 파란 많은 일생을 보낸 영친왕은 지난해 5월1일 73세를 일기로 세상

    중앙일보

    1971.04.30 00:00

  • 불구아의 보금자리…명혜 회관

    지난 68년 19명의 신체 장애아의 교육을 시작, 서울 시내 YMCA 회관 등 3개소에 분산된 교육 시설을 통해 50여명의 불구 아동의 기능 교육을 맡아왔던 명휘원 (이사장 이방자

    중앙일보

    1971.06.01 00:00

  • (134)|해방에서 환국까지-정신적 고초로 인한 뇌혈전증 명의들의 진력에도 호전 안돼

    동경 성로가 병원장의 말을 들으면 영친왕의 명세는 고혈압으로 인한 뇌혈전증으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으며 말조차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날까지만 해도 약간 정신

    중앙일보

    1970.10.13 00:00

  • (133)|해방에서 환국까지

    민병기교수의 덕택으로 벼락감투를 쓰게된 우리들은 곧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게되었는데 악선재 윤 대비과 운현궁 흥친왕 비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었다. 그 중에도 나와함께

    중앙일보

    1970.10.12 00:00

  • (107)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동경에 있는 영친왕의 저택이 국 유니까 즉시 반환케 하라는 이대통령의 성화같은 독촉에도 불구하고 김용주 공사나 신성모 대사는 당시 일본정부의 견해나 스캡(연합국최고사령부)의 바임이

    중앙일보

    1970.09.09 00:00

  • (125)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이 대통령이 윤 대비의 환궁을 기뻐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 있다. 첫째 과거 10년 동안이나 윤 대비를 정능에 있게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 대통령 자신인데 마치 그런

    중앙일보

    1970.10.02 00:00

  • (105)황성기독청년회|오리 전택부(제자는 필자)

    청년회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 당시 권세 있게 잘 살던 승지 조남승씨가 예수교에 흥미를 가지고 1904년 겨울부터 YMCA에 와서 성경을 강론하며 가끔 출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앙일보

    1971.03.13 00:00

  • 영친왕의 외아들 이구씨 줄리아 여사와 합의이혼

    이씨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줄리아 여사(52·사진 우)가 순종의 손자이자 영친왕의 외아들인 부군 이구씨(51·사진 좌)와 합의 이혼키로 함으로써 오는 7월1일 그녀가 20년동안

    중앙일보

    1982.06.23 00:00

  • 장애아 돕기 자선행사 이방자 여사 직접나서

    영친왕 이은공의 부인. 이방자 여사는 7일(하오 5시)국제 존타 서울 클럽이 주최하는 장애아동 돕기 자선행사를 위해 철쭉꽃과 라일락이 만발한 낙선제를 개방한다. 이번 자선모임은

    중앙일보

    1981.05.06 00:00

  • 황녀였기에…비운의「80평생」|고종의 서녀 이문용 여사의 사록을 들어보면

    【전주=김수길·장남원 기자】삼단 섬들에 쑥색 고무신 한 켤레가 단정히 놓여있다. 이태조의 어진(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신 경기전(전북 전주시 풍남동 3가102) 안뜨락 양지바른

    중앙일보

    1981.02.21 00:00

  • 이헌재 부총리, 알려지지않은 가족사 공개

    이헌재 부총리, 알려지지않은 가족사 공개

    이헌재(李憲宰)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부친이 독립운동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부총리는 최근 부친 이강하씨가 일제시대 때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년부장을 지냈다고 밝히는

    중앙일보

    2004.03.16 17:41

  • 이조잔영

    『참으로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어려웠던 긴 세월이었다.』 이방자 여사는 자서전『지나온 세월』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의「세월」은 한 자연인의 연륜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중앙일보

    1970.05.02 00:00

  • (68)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은 그해 12월에 육군중장에 승진하고 다음해 7월에는 우도궁 제51사단장에 임명되어 8월에는 벌써 부대를 이끌고 북지의 금주로 출발하였다. 소위 만주사변이 일어난지도 벌써 1

    중앙일보

    1970.07.24 00:00

  • (87)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8·15 해방이 되었을 때 영친왕은 누구보다도 아버님 고종황제를 생각하였었다. 큰 어머님 명성황후가 일본 장사패에 의해서 참혹한 죽음을 한 이래 평생을 두고 일본을 원망하고 저주하

    중앙일보

    1970.08.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