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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잔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참으로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어려웠던 긴 세월이었다.』
이방자 여사는 자서전『지나온 세월』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의「세월」은 한 자연인의 연륜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세음모의 역사, 그 고달픔에 대한 역겨움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자기의 연명에 대해 스스로 아무런 결단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비극은 없다. 더구나 망국의 쇠잔함 속에서 그런 운명에 묻힌 한 왕족의 최후엔 연민의 마음마저 솟게 된다.
실로 이 왕가는 이제 최후의 황태자와 함께 그 한스러운 잔영을 거두고 있다. 비극, 비극만의 연속이었다. 고종의 장자 순종황제는 후손이 없다.
순종의 최후도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차자인 의친왕(이강)은 불가사의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는 지금 병상에서 아무런 의식도 없다. 영친왕 이은공은 조국의 흙을 밟아본 시간이 전생에의 7분의1에도 채 못 이른다.
11세에 조국을 떠나, 무려 반세기릍 나라없는 황태자로 묶여 있었다. 그 지리하고 침울했던 역사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달랠길이 없다. 그러나 그 역사의 서구속에서 터무니 없이 희생된 이은공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엔 더한 마음이 없다. 그것은 왕가에 대한 경외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인간적인 동정을 자아내게 한다.
방자여사의 자서전엔「이은전하」가 63년 11월 귀국을 앞두고 몹시 흥분해 있던 모습을 전해 준다. 언제나 근엄하고 과묵한 편이던 그도 조국에의 향수엔 실로 누구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것은 59년만의 환국이기도 했다.
환국당시의 신문들은 비록 병상이긴 하지만 이은공이 안온하고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그「서울의 첫날 밤」을「스케치」하고 있다. 어쩌면 이은공은 평생을 두고 이처럼 마음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조국의 품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 오랜 병상의 세월이긴 했지만 그분의 마음은 편안했을 것 같다. 5월의 눈부신 신록속에서, 왕궁엔 때마침 목단꽃이 만발한 속에서, 그는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때아닌 가뭄 끝에 비마저 내리고 있다.
대한제국의 명멸하는 잔영에 누군가는 그 빗방울 처럼 슬픔을 달래고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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