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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골 여귀꽃으로 물들인 분홍 한복, 미술 작품 같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한복 전시 ‘다이얼로그, 상춘곡’을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남원의 꽃 여귀로 염색한 분홍 한복을 LED 조명이 켜진 마네킹에 입혀 놓았다.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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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하나는 부족하다니
외둥이냐, 다둥이냐.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고민거리이기도 하죠. 최근엔 외둥이를 누렇게 뜬 외떡잎 식물로 표현한 포스터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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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시인 “숙맥, 바보가 나에겐 멘토”
유안진삶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남을 앞서고 이겨 먹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유안진(72) 시인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5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문예중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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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이 옷들의 출발점, 한복입니다
에스모드 서울의 ‘멋.짓다’ 전시 출품작. “개량한복을 넘어서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한국적이고, 낯설지 않고, 그러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거듭났다. “우리 문화·역사·예술·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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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산화 사세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가 파는 등산화 사세요" 최근 한 홈쇼핑이 쇼핑호스트 지망생 중 'UCC동영상 제작' 관문을 통과하는 사람을 정식 채용하겠다고 나서 화제다. 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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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부문 천연기념물]
지정번호 / 명칭 / 소재지 / 비고 - 제28호 / 고령산평탄면 / 평양시 상원군 노동리 / 평양 준평원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함. 해발높이는 280~440m - 제30호 / 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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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방방곡곡 추억을 캔다
'버려진 학교'라는 뜻의 '폐교'는 이제 어색한 말이 됐다. 변신을 통해 다시 개교하고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됐으니까. 볼거리와 할 거리가 있는 폐교들을 추려봤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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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 45. '나는 영원한 세일즈맨'
오늘은 내가 쓰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마지막 회다. 내 사업 경험이 남들에게 교훈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기까지 왔다. 50여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익힌 몇가지를 말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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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44.수출진흥기금
무역협회에서 하는 일은 많았다. 1970년대에는 수출진흥기금을 조성해 운영하는 일을 했고, 90년대에는 그 일로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무역협회는 1969년부터 민간 차원의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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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43. 한·일 교역
한국 무역사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를 꼽으라면 대일 무역적자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과 무역을 해 번번이 적자를 봤다. 그동안 쌓인 적자액이 1천8백억달러나 된다. 비단 어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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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42.貿協·商議 건설위원
나는 브래지어 등 여성 속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제조업을 하고 있지만 원래 사업은 무역으로 출발했다. 6·25 전쟁 직후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며 꿈을 키웠고 홍콩을 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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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41.'밑가슴'과 '윗가슴'
75A.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많이 입는 브래지어 컵의 크기다. 이 기호에서 앞에 있는 아라비아 숫자는 가슴의 둘레를 ㎝ 단위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유방 아래의 가슴 둘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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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40.서양의 속옷 문화
"비비안이 만든 브래지어가 저희 회사를 살렸습니다." 미국 굴지의 브래지어 회사인 메이든폼(Maidenform)의 토머스 회장과 모리스 사장이 지난 4월 한국으로 나를 찾아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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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9.중국에 공장 건설
나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1992년 중국에도 공장을 건설했다. 비싼 임금 때문에 해외진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두번째 거점이 중국이었다. 내가 중국을 찾은 것은 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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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8.인도네시아 첫 진출
해외에 진출하려는 꿈은 17년 만에야 이뤄졌다.1972년 괌에 현지공장을 차리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89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운 것이 첫 해외진출이다. 80년대 말에는 국내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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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7.무산된 해외진출
"남사장님. 괌에 한 번 가보지 않겠습니까?" 1972년 3월.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대형 도매회사인 데라우치(寺內)의 전무가 괌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놀러 다닐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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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6. 名畵 넣은 달력 인기
"달력 사진 찍을 모델이 없다" 어느날 홍보담당자 고충 호소 "속옷 사진 꼭 넣을 필요 있나" 세계 명화로 달력 만들어 히트 나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올 때면 수첩에 스케치를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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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話고쟁이를란제리로 : 35. 50년 知己
내 집무실에는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다.코오롱 그룹 이동찬(東燦·80) 명예회장이 1995년 4월에 그린 유화다. 지난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팔순 기념 전시회를 마친 회장이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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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4.패션 스타킹 시대
스타킹은 원래 남성용이었다고 한다. 4~5세기 성직자들이 법의(法衣)의 격식에 맞춰 신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성의 차지가 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반바지를 입고 지내던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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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고쟁이를란제리로 : 33. 고탄력 스타킹
나는 브래지어보다 스타킹을 먼저 만들었다. 브래지어는 1963년부터 만들었지만 스타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57년이다. 국내 스타킹 역사의 출발이기도 했다. 당시 스타킹의 소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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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話 고쟁이를 란제리로 : 32. 변화무쌍한 유행
외국 영화를 보면 가끔 브래지어가 화제로 떠오르곤 한다. 여성의 풍만한 가슴에 이끌렸던 남자 주인공이 나중에 브래지어의 '마술'에 속은 것이라며 툴툴댄다. 1990년대 초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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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고쟁이를 란제리로:31.'노 브라'
1990년대 중반 여성들은 속옷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브래지어 위에 갖춰 입던 내의(언더셔츠)를 벗어던지는 여성이 늘어났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출은 금기에 해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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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고쟁이를란제리로:30."가슴을 키우세요"
"여자는 가슴이 크면 미련해 보인다." "여자의 가슴 크기와 아이큐는 반비례한다." 남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농담처럼 오가던 때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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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고쟁이를란제리로 :29. 신소재 사용
"브래지어에 철사를 넣는다구?" 1970년대 브래지어 제품에 철사(와이어)를 넣기 시작했다. 납작한 철사를 U자 모양으로 구부려 브래지어 컵의 아래를 받쳐주도록 했다. 가슴을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