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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하나는 부족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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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둥이냐, 다둥이냐.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고민거리이기도 하죠. 최근엔 외둥이를 누렇게 뜬 외떡잎 식물로 표현한 포스터가 등장해 외둥이 엄마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쌍둥이가 등장하는 TV 육아 프로그램이 인기고, 정부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 설을 앞둔 외둥이 부모들의 마음은 더 무거워만 집니다. 일가 친척들의 ‘둘째는 안 낳을 거냐’는 질문 세례, 올해도 이어질까요. 외둥이든 다둥이든 ‘될성부른 떡잎’의 조건이란 충분한 사랑과 애정이라는 양분이 아닐까요.

똑같이 잘못해도 ‘외둥이니까’ 수군수군 … 편견 아닌가요

외둥이 가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9.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가 한 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외둥이 부모들은 어디 가나 ‘언제 둘째 낳을 거냐, 왜 안 낳는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외둥이가 뭐가 문제라는 걸까.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외둥이를 둔 엄마 15명과 둘 이상의 자녀를 둔 엄마 15명 등 총 30명의 엄마들에게 외둥이와 다둥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 봤다.

그 내용을 외둥이를 둔 엄마의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1. 엄마 편하려 둘째 안 낳냐는 동네 아줌마

지난달 논란이 됐던 한국생산성본부 공모전에서 뽑힌 출산장려 포스터.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누렇게 시든 외떡잎과 싱싱한 쌍떡잎 새싹을 대조적으로 배치했다. 금상을 줬다가 거센 비난에 취소했다.

설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남들은 모처럼 주말까지 합해 쉴 생각에 좋다는데 저는 피하고만 싶습니다. 취업준비생이냐고요? 결혼 못하고 부모 속 태우는 노처녀냐고요? 아닙니다. 전 세 살배기 딸을 키우는 외둥이 엄마입니다.

결혼식 당일 신부대기실에 조신하게 앉아 있던 저에게 “나이가 있으니 애부터 낳으라”던 시이모님의 걱정은 가족계획을 재촉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신혼여행 이후부터 줄곧 ‘언제 애 낳냐’는 질문을 받았죠. 친정 엄마조차 애 못 갖는 딸을 시집보낸 죄인마냥 조바심을 내셨죠. 그래서였을까요. 결혼 2년이 채 되기 전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이젠 다 끝났다’는 생각에 밀린 숙제를 해낸 듯 가슴 한 켠이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100일도 안됐을 때부터 곳곳에서 둘째 계획을 묻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실 명절은 며칠뿐이니 참을 수 있습니다. 더 화가 나는 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우리 부부의 가족계획에 참견을 한다는 겁니다. 아파트나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줌마는 “엄마 편하려고 하나만 낳았냐”며 잔소리를 늘어 놓습니다. 친한 친구마저 둘째를 낳더니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둘이면 행복이 세 배, 네 배”라며 출산 전도사로 돌변했고요. 한 달 전에는 한국생산성본부라는 곳에서 외둥이를 누렇게 시든 외떡잎 식물로 표현한 포스터에 금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길로 이름도 생소한 한국생산성본부라는 곳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동안 외둥이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말들이 생각나 한참 동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담당자 전화번호요? 엄마들이 가입돼 있는 온라인 카페에 올라와 있었거든요. 온라인 카페에는 신문사며, 방송국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엄마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저처럼 화난 외둥이 엄마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포스터 시상은 취소됐고, 한국생산성본부 홈페이지에는 사과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변한 건 없습니다. 저는 그대로 외둥이를 키우는 엄마고, 주변의 시선도 그대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외둥이로 키우면 우리 딸이 배려심도 없고 사회에 적응 못하는 아이가 되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도 듭니다.

2. 한 명 키우는데 3억, 한숨 나옵니다

일러스트=심수휘

외둥이기 때문에 걱정은 많지만 솔직히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터라 때론 아이 하나도 벅차게 느껴지거든요. 출퇴근 베이비시터가 있지만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긴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게 정말 힘듭니다. 게다가 어린이집 보육교사나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학대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애는 괜찮나’ 불안해집니다.

주위 외둥이 엄마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회사입니다. 올해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둔 친구는 상사가 직원들의 결혼 계획까지 물으며 예민하게 구는 통에 당분간 둘째 계획은 어렵다며 하소연합니다.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한 엄마는 지금은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지만 둘째까지 부탁할 순 없어 외둥이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력 단절도 두렵습니다. 똑똑한 20대 청년들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데 아이라는 혹까지 달린 아줌마를 반겨주는 직장이 어디 있겠어요. 일하며 만난 한 지인은 둘째를 간절히 원하지만 경력 단절 때문에 외둥이로 마음을 굳혔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시기예요. 둘째를 가지면 회사를 쉬어야 하고, 애 봐줄 사람이 없으니 육아휴직까지 써서 1년을 쉬면 다시 일 구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자라는 동안 오빠와 비교당하고 나눠갖는 게 늘 유쾌하지만은 않았거든요. 오히려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란 친구들이 외둥이를 고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더군다나 아이 하나 키우는데 3억원이 넘게 든다는 말에 둘째 생각은 다시 저 뒤로 밀어뒀습니다. 방배동에 사는 한 엄마는 “강남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결국 그 집은 남편이 먼저 한 명에게 제대로 투자하고 남은 돈으로 부부의 노후준비를 하자고 설득해 외둥이 가정이 됐습니다. 아이 둘을 가진 지인도 이 말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논현동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는 “현실적으로 둘째는 경제력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편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가 동생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이 다섯 살 무렵 동생이 생기면 엄마가 자기보다 동생을 예뻐할 거 같다며 동생을 거부해서 외둥이로 만족했다는 엄마도 만났습니다. 그 아들은 올해 고3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한 엄마는 본인의 딸이 혼자 충분히 행복해 한다고 말하더군요. 하긴 전문가들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외둥이가 외롭다는 건 엄마들의 생각이지 정작 아이는 외로워하지 않는다고요.

사실 부모의 상황이나 아이의 성향 때문에 외둥이를 택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낳고 싶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난임 엄마들에겐 ‘둘째’라는 이야기 자체가 상처가 됩니다. 첫아이의 임신부터 출산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둘째가 생기지 않는 가정을 종종 봅니다. 논현동에 사는 40대 주부도 낳을 수만 있다면 더 낳고 싶지만 생기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외둥이로 키우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3. 출산 후 24개월 무렵, 낳을까 말까

일러스트=심수휘

사람 일은 알 수 없죠. 저도 남편과 둘째 얘기를 종종 나눕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만 잘 키우자’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그러나 외둥이 엄마들은 한 번씩 마음이 흔들립니다. “둘째는 엄마가 폐경되는 순간까지 고민하는 문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외둥이 가정이 다둥이 가정으로 바뀌는 시기가 정해져 있더군요. 바로 아이가 24개월을 지날 무렵입니다. 실제 둘째를 낳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결같은 답변을 합니다. “아이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시기예요. 힘든 육아를 끝내고 나니 우리 아이가 아기였을 때가 그리워지기도 해요. 무엇보다 터울이 벌어지기 전에 하나 더 낳아 친구처럼 자라게 해주고 싶었어요.” 적게는 한 살, 많게는 네 살 터울 형제자매가 많은 건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죠. 아이를 다 키워놨다는 생각도 들고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둘째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고 합니다. 주변에 종종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걸음마를 뗀 동생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건 이 때문이겠죠. 사실 이때 낳은 늦둥이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답니다. 몸은 힘들지만 두 아이가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나요.

얼마나 행복하길래. 궁금하지만 그래도 전 외둥이를 택할겁니다. 가뜩이나 정년도 점점 짧아지는 마당에 마흔에 낳은 둘째가 대학에 갈 때면 저는 환갑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게다가 이제 좀 여행을 다닐 수 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밥 좀 먹을 수 있는데, 잠 못 자고 수유하고 기저귀 가는 육아전쟁을 치르라니, 그건 못할 거 같습니다.

4. 사회성 부족할까봐 걱정도 돼요

그래도 외둥이로 키우는 건 걱정이 됩니다. 사람들의 말처럼 이기적이고 배려없는 아이로 크는 건 아닌지,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늘 고민합니다. 사실 제일 큰 걱정은 외로움이죠. 아이가 둘 이상인 엄마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도 이거죠. 아이들끼리 서로 챙겨주고 함께 노니까 아이들은 외롭지 않고 엄마는 손이 덜 가 편하다는 겁니다. 이건 다둥이 엄마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외둥이 엄마들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솔직히 외둥이에게 엄마 손이 많이 가긴 하거든요. 아무래도 놀 상대가 엄마와 아빠뿐이라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가 죽고 난 후 아이가 혼자 남겨질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와 가족은 다르니까요.

남매를 둔 한 엄마가 전해준 얘기도 충격입니다. 딸과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외동딸이 많은데 그 아이들이 하나같이 ‘부모님의 기대를 혼자 다 받아 부담스럽다’고 한다는 겁니다. 솔직히 아이가 하나이다 보니 온 기대와 신경이 딸에게 쏟아지긴 합니다.

5. 엄마 카페선 둘째 논쟁 자동삭제

가뜩이나 외둥이라 걱정인데 주변의 시선은 저를 더 지치게 합니다. 형제자매로 키울 때의 장점을 강조하는 건 애교 수준이죠. 어떤 엄마는 동네 어르신이 고쟁이를 구해와 주고 가더라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고쟁이를 입으면 아이를 잘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나요. 그 어르신은 아이를 못 낳는 것 같아 안쓰러웠던 거겠죠. 일산에 사는 40대 한 지인은 안 낳은 게 아니라 못 낳은 거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들은 후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엄마 편하려고 둘째를 안 낳는 거냐’며 외둥이 엄마를 아이는 뒷전인 이기적인 엄마로 모는 말을 들을 땐 가슴이 더 아픕니다. 정말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건 아닌지, 아이에게서 동생을 뺏은 건 아닌지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외둥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러한 편견은 외둥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외둥이기 때문’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줍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다둥이 가정의 아이에겐 무엇이 문제인지 다양한 방향에서 원인을 찾지만 외둥이는 ‘외둥이니까’라고 결론내 버리는 거죠. 실제 외둥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합니다. 두 딸을 키우는 한 엄마가 외둥이에 대해 “자기만 돋보이려 하거나 무엇이든 먼저 하려고 한다”고 평가하는 말을 듣고 많이 속상했습니다.

다행인 건 예전보다 외둥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는 겁니다. 외동이가 흔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같습니다. 제가 자주 들어가는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만 해도 외둥이 맘 수다방에 둘째 찬반 논쟁 글이 올라오면 자동 삭제 될 정도입니다. 종종 외둥이들이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것 같다는 말도 들려오니 앞으로 더 좋아지겠죠.

6. 외둥이냐 다둥이냐 정답은 없잖아요

외둥이 엄마가 늘 다둥이 엄마에 비해 주눅드는 건 아닙니다. 다둥이 엄마들이 저를 부럽게 바라볼 때도 있거든요. 바로 여유로움이죠. 딸이 세 살이 되니 어느 정도 말이 통하고 날씨 좋은 날엔 손잡고 나들이도 가능합니다. 밤새 기저귀를 갈지 않아도 되고 밤중에 수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지금 둘째를 낳는다면 지금의 여유는 사라지겠죠. 게다가 어린 동생 돌보느라 첫째는 뒷전이거나 첫째가 질투하며 둘째를 괴롭히는 걸 볼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아이가 하나니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전 어린 시절 오빠와 저를 비교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무척이나 싫었거든요. 다른 집 보면 첫째가 뭘 잘하고 둘째는 뭘 못한다며 비교하는데 전 딸 하나뿐이니 그럴 일이 없습니다. 딸도 비교 받지 않아도 되니 좋겠죠.

가장 좋은 건 경제적인 여유로움이죠. 2~3명에게 투자할 비용을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거나 아니면 남은 돈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잖아요. 딸에게 옷 한 벌 사줄 거 두 벌 사줄 수 있고 학원도 하나 더 보내줄 수 있으니 마음 한 켠이 든든합니다. 대치동에 사는 한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고등학생 아들에게 한 달에 드는 사교육비가 200만원이랍니다. 학비를 제외하고 말이죠. 많이 들어갈 땐 300만원까지 든다는데 아이가 둘이면 적을 땐 400만원, 많을 땐 600만원까지 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네. 저는 이 돈을 아껴 아이와 자주 여행을 다닐 계획입니다. 세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그렇게 말이죠.

외둥이냐 다둥이냐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죠. 외둥이가 이기적이라거나 외롭다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것 아닐까요. 제발 주변의 외둥이 부모들에게 ‘언제 둘째 낳을 거냐’는 질문은 멈춰주시길.

글=송정·정현진·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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