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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는 극좌·극우에 더 많았다"
좌.우익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 정국에서 활동한 중도파 민족지도자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는 학술대회가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유영렬) 주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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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제하 신문 친일' 조명 다큐
일제시대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행태를 조명한 KBS의 다큐멘터리 방송을 둘러싸고 해당 신문사가 전문가의 반박 칼럼을 싣는 등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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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미국 다루기
히딩크 감독은 미국을 상대할 줄 알았다. 무승부였지만 용병술은 돋보였다. 상대방 수 읽기, 스타팅 멤버에 대한 연막 작전과 심리전, 선수 기용의 냉정함, 그리고 오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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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독립운동가 고 송남헌옹
지난 20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송남헌(宋南憲)옹은 평생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걸었다.그는 일제 하에서는 독립을,해방 후에는 민족의 단결과 분단의 극복을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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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상 김규식이 처음 제안"
"김규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거의 유일한 이성적.진보적 정치인이었다." 우사(尤史) 김규식(1881~1950.사진)에 대한 성균관대 국사학과 서중석 교수의 평가다. 이런 표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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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극비리 일본왕 만났다" 여연구 수기서 밝혀
몽양 (夢陽) 여운형 (呂運亨) 이 1940년 도쿄를 방문해 극비리에 일본 천왕 (天王) 을 만나 격론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다. 47년 7월 19일 몽양이 혜화동 로타리에서 암살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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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돌-발굴 항일 독립투사
1934년9월19일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총사령(總司令)양세봉(梁世鳳)은 경호대원 2명과 함께 랴오닝(遼寧)省 환런(桓仁)縣지역을 지나던 중 길옆 옥수수밭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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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누가 최고지도자인가
해방정국에서 최고 인기 정치지도자는 누구였나.얼핏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먼저 떠오른다.그러나 해방정국시기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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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사학계서 재조명-역사문제연구소 토론회
역사소설이 사학계의 비판적 검토를 받고 있다.역사문제연구소는2일부터 12월7일까지「작가와 역사가와의 대화」를 주제로한 토론회를 마련,작가와 역사학자.독자들의 토론형식으로 역사소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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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주최「한국현대사」강연회
중앙일보사와 한국역사학회가 공동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하는 8·15광복절기넘 한국현대사 강연회가 13일 오후2시 한국프레스센터20층 국제회의실에서 관계학자 및 일반인등 2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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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암살배후 규명 계기로 본 극우테러의 실태
◎좌우대립시기 요인암살 의혹 밝혀야/이승만 총애 받은 일군 헌병출신 김창룡/「반이」 주장 정적은 “빨갱이”로 몰아 숙청/몽양·운산 등 저격범 잡고도 배후미궁에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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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과 소 군정(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7)
◎겉으론 협력 속으론 갈등/이북5도 대표협 결성… 통치기구 정비/고당 “손은 잡되 소 잘못땐 비폭력 저항” 소 군정과 조만식의 관계는 미묘했다. 해방이 됐으니 자주독립국가를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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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독증 누가 치료하나/최철주(중앙칼럼)
◎다시 국치일을 맞으며 서울의 어엿한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대학생이 동경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어째서 일본까지 가야 하느냐고 친구들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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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장|독립운동 정신기려 극일에 ″앞장〃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민족해방의 달」 8월을 맞을 때마다 새삼스레 떠올리게되는 화두다. 해방 46년, 이제 그 논쟁의 의미도 열기도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매년 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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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적" 교육서 탈피
문교부와 한국교육개발원(원장 신세호)은 13일 초·중·고교학생에게 통일과 안보에 대한 균형적 시각과 통일의 자생력을 키워줄 「학교통일·안보교육 지침서」를 확정, 각급 학교에 배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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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44) 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
계동 열성자대회 다음날 이정윤 아지트에 나가니 이우적은 없고 이정윤 혼자 있었다. 이정윤은 열성자대회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며 『당이 통일·재건되게 되었으니 앞으로 투보는 발행할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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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프락치 사건 "이정권 - 한민당 조작극"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40년 만에 다시 일반의 관심을 끌었던 국회프락치사건은 이승만 정권과 한민당 세력의 합작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변호사 박원정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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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김종필 공화당총재로서는 정계개편을 해볼만한 것이다. 그의 공화당만으로는 현재의 제4당이란 위치에서 탈출할 수도 없고 단독집권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말이 나오는 대로 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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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좌·우 합작
해방 이듬해, 1946년 5월에 김규식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시작된 좌우합작운동은 이 시기의 정계에 형성되어 가던 중도적 정치세력을 중심으로한 하나의 정치운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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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준이냐 한민당이냐|새 시대 주도권 싸고 대립 첨예화
해방40년은 이제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해방과 건국의 질풍노도가 소용돌이쳤던 해방정국 3년.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을 구상하고 논쟁하고 행동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성공하고실패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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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36년(33) 대륙의 일여인들|발굴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일제의 대륙침략과 더불어 많은 일본인 여성들도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들중에는 남자 못지않은 활약을 보인 맹렬여성도 적지않다. 춥고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남자들도 힘겨운 마적의 여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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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의열단(6)
김야산의 항일운동과 함께 의열단의 활동중 특이한 것은 전중의일육군대장 저격사건이후의 오성륜의 행적이다. 오성륜의 행적은 그가 엄격한 테러리스트로 모든 행동이 비밀리에 이뤄졌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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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36년의열단(5)발굴 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 통치의 뒷 무대
일본에 대한 무력 항쟁에서 의열단의 활동은 단연 으뜸이다. 그들은 최후까지 항쟁했고 자랑스럽게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사였을 뿐 새나라 건설에 적응하지 못했다. 약산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