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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을 찾습니다
조선조에는 유난히도 큰 도둑들이 많았다.연산군때 가평.홍천의 홍길동(洪吉同),명종때의 양주 백정 임꺽정(林巨正),선조때 충청도 일대를 장악한 이몽학(李夢鶴),광해군때의 서양갑(徐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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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大 지두환 교수 '조선과거실록' 펴내 - 조선시대 及第답안 한권에 담아
때는 조선조 광해군 13년(1661).실정(失政)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국가 기강도 크게 흔들렸다.이 해 과거시험문제는“가장 화급한 사안에 대해 대책을 쓰라”였다.당시 꼴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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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哺之孝-까마귀의 孝 지극한 효심
한국이나 중국사람들은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여긴다. 특히 울음소리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즉 아침에 울면 아이가,낮에 울면 젊은이가, 오후에 울면 늙은이가 죽을 징조며한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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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모습 되찾는 경희궁 자정전 조선조 임금초상도 봉안
일제에 의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경희궁안의 자정전(資政殿)터가 85년만에 그 모습이 드러나면서 資政殿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궁궐배치도 참조〉 〈中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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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소동(분수대)
조선조 광해군때 서양갑이라는 사람은 서자출신이었다. 벼슬길이 막히는 등 부당한 차별대우에 분개한 그는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여섯 젊은이들과 함께 소양강상의 「죽림칠현」이란 조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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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와 척화(분수대)
연산군과 조선조의 대표적 폭군으로 꼽히는 15대 임금 광해군이 외교에 있어서는 상당한 솜씨를 보였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시각이 있다. 1616년 성립한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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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김장생「사계예학」의 종실 둔암서원
하늘을 나는 새, 땅에 기는 짐승, 그것들과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을 가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선신들은 이런 물음 앞에 참으로 많은 지혜를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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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이항복의 충의받드는 화산서원
글을 읽어 사람이 사는 도리를 깨닫고, 높은 벼슬에 올라 권력과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나무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러나 정작 배운 대로 몸으로 행하고 벼슬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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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길재의 절의 숨쉬는 탐치정
어질고 지혜로운 이들은 스스로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 깊은 곳에 묻혀 살았다. 더구나 나라가 어지럽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목숨을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할 때, 지성인으로서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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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인 이근배|조식 남명학 출처시의 종가 산천 재·덕천서원
지리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니다. 이 나라 모진 역사의 비바람을 이겨내면서도 끓어 넘치는 정기를 나누어 좋은 산과 착한 물을 이 땅에 넉넉하게 키우며 살아왔다. 산과 물뿐이랴. 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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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제2부 해방 정국의 좌우 대립
나는 해방일보 사장 권오식의 지시로 미 군정청에 출입한 것은 이미 썼지만 수도 경찰청에도 출입하게 됐다. 소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일이 있어 경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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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좌수영 주민들이 보호에 앞장|관리소홀로 사적·유물 훼손|성역화추진 시민운동 활발
전라남도 여수시를 중심한 옛좌수영지의 주민들이 좌수영일대의 숱한 사적·유물들을 스스로 지키자며 발벗고 나섰다. 주민들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구국혼이 깃든 사적·유물들이 당국의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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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숭정전 연내복원
서울시는 19일 경희궁안「꿈나무극장」을 헐어낸 자리가 조선조때 경희궁 정전이었던 숭정전자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5월부터 5억여원을 들여 연말까지 같은 장소에 숭정전을 복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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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전 경희궁 터에 복원공사
조선조 광해군 9년(1617년)에 경희궁의 정전으로 건립됐던 숭정전이 63년만에 경희궁 터에 복원된다. 숭성전은 1922년 조선총독부가 경희궁 건물을 모두 헐 때 조계사에서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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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농촌 한눈에 「출성관광」즐긴다
서울근교에 가볼만한 곳 쾌적한 봄바람을 맞으며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행주산성과 남한산성은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고 자녀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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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사사리탑 보물 지정 지난2월 일본서 찾아와
문공부는 지난 2월 일본에서 반환되어온 조선조 광해군때 세운 봉인사부도암사리탑과 그 사리 용기를 29일 보물 제928호로 지정했다. 사리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옛 모습대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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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고향(172)재령 이씨
재령이씨의 시조는 고려의 중신 이우수이다. 문하시중을 지내고 재령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재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원래 본관은 「경주」였으나 이 시기에 분관됐다. 이후 재령이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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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청주 정씨
청주 정씨는 춘곡 정탁 (세종·우의정), 백곡 정곤수 (선조·좌의정), 약포 정탁 (선조·좌의정), 한강 정구 (광해·대사헌·학자) 등 당대의 석학과 명신을 낳았다. 이들은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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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영월 최씨
삭령(삭령) 최씨는 고려중엽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천노를 시조로 한다. 본관 삭렴 (현 경기도 연천) 은 그가 관직에서 은퇴한 후 봉받은 고을 이름. 고려 명종때 대사성·문하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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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글 사진 이용우기자) 일직손씨
일직손씨는 본래는 지나에서 건너온 순씨였다. 고려8대임금인 현종이「손」자를 성으로 내려 손씨가 됐다. 현종의 이름이「순」이어서 그음이「순」과 같아 바꾸도록 사성을 했다고한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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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복원
서울에 또하나의 역사 문화 명소가 선을 보이게 되었다. 서울시는 구서울중·고교 자리에 있었던 경희궁을 발굴 88년까지 복원하여 시민공원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경희궁은 조선조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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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글 임수홍기자 사진 신동연기자)|청주 사씨
청주사씨는 지나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한 사요가 시조다. 산동성 청주사람인 그는 명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예부상서의 벼슬까지 지냈으나 명태조의 왕세자 명승과 함께 왕위찬탈을「꾀했다는 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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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상을 원색화보로 소개
조선조의 의상을 원색화보와 해설로 소개하는 2권의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한국복식사 연구의 제1인자인 석주선 저『의』와 영친왕비 이방자 저『조선왕조 궁중의상』. 2권의 책 모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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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사천 목씨
목씨는 전국에 2천여가구 1만여명, 성별인구순위 1백13번째 희성이다. 사천단일본. 고려조에 낭장·동정을 지낸 목효기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선대가 사천에 살며 형제간의 우애가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