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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영월 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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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삭령(삭령) 최씨는 고려중엽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천노를 시조로 한다.
본관 삭렴 (현 경기도 연천) 은 그가 관직에서 은퇴한 후 봉받은 고을 이름.
고려 명종때 대사성·문하시랑평장사등을 지낸 최유가는 삭령최씨의 중시조.
최유가이후 삭령 최씨는 친어모군 낭장 최선보를 1세로 하는낭장공 (낭장공) 파와 동함경전부사 최연을 1세로 하는 부사 (부사)공파로 나뉘어 1천여년 혈맥을 잇고 있다. 조선조의 문과급제자 수는 총 37명. 영의정4명(증직2명 포함), 판서 10명을 내는등 문벌로도 손색이 없다.
연의 3세손인 복린은 조선조 초 집현전 직제학·대사간을 지내고 은퇴한 뒤 진주 촉석누를 사재를 덜어 중건, 오늘의 모습으로 남게한 인물.
그의 아들 도원 (지평) 은 이를 인연으로 진주에 자리잡아 현재도 사천일대 후손들이 퍼져 고장의 대성이 됐다.
삭령 최씨의 이름을 역사에 가장 빛낸 이는 조선조 세종때의 명신 최항이다. 세종 16년 장원급제후 대사성, 대사헌, 이조· 형조·법조판서, 대재학등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에 까지 올랐다. 한글을 새로 만들고 『용비어천가』를 지어 펴고 『동국정운』등 많은 책을 편찬해내는데도 간여했던 대학자.
최항의 과거 장원급제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과거발표를 며칠 앞둔 어느날, 세종은 꿈을 꾸었다. 한마리의 용이 성균관 잣나무를 휘어감고 있는 꿈이었다. 날이 새자 세종은 신하를 성균관으로 보내 잣나무 주위를 살펴 보도록 명했다. 잣나무 밑에서는 한 선비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날, 과거급제자가 발표되었다. 장원은 최항이었다. 그가 바로 잣나무 밑에서 오수를 즐기던 선비였다.
이후 성균관 유생들은 이 잣나무를 장원잣나무 (장원백) 라 불렀으며 과거를 앞두고는 그 밑에서 일부러 잠을 자고 응시하는 전통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태종때 보문각 직학사를 지낸 최사유.
최항의 형 최형은 단종때의 절신. 그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분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삭령으로 낙향, 절의를 지켰다.
최수웅 (충의정략장군) , 최흥원(선조 이조·호조·병조·예조판서·영의정)등은 조선중기에 삭령최씨가문을 빛낸 얼굴들.
언수 (정언), 옹대사헌, 상중(호남초유사), 연(승지), 유지 (사간), 치옹 (지평) 등은 6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 「6대 등과」로 이름을 떨쳤다.
이중 최흥원은 4차례나 장관(판서) 을 역임하고 수상 (영의정) 의 자리에 올랐으며 청백리로 선록된 명신.
최언수는 명종때 권신 윤원형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의 구선동에 낙향, 초야에 묻혀 여생을 마친 선비였다.
최영 (충의위어모장군), 최옹(대사헌), 최정 (지평) , 최적 (목천현감)등 4형제는 언수의 아들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국난이 이어지는 조선조 선조때이후 삭령최씨 일문은 구국의 싸움터에서 가문의 기백을 떨친다.
최응룡 (형조참판) 과 그의 아들 영수는 임진왜란당시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고 곽재우장군휘하에서 용맹을 떨치던 최언양과 그의아들형진·상진등 3부자는 진주성전투에서 나란히 순직했다.
최동립 (황해감사), 최상중 (대사헌) 등도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싸운 창의공신들. 또한 최연 (한성부좌윤), 최온(승지) 형제는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에 붓을 던지고 일어나 큰 공을세웠다.
동립의 동생 동식 (사간)은 광해군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서릿발같은 상소를 서슴지 않았던 대쪽같은 성품의 인물.
최응립은 병자호란의 명장. 인조2년 민병 3백명을 지휘,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던 그는 병자호란이 나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강화도전투에서 전사했다. 사후에 호조판서경 의금부사가 추증됐다.
최유지· 최한기는 조선조후기 삭령 최씨가 배출한 대표적인 석학들.
유지는 천문·서예·지리·병법·예악등에 두루 통했으며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해시계 (세종때 제작) 를 다시 만들어낸 과학자이기도 했다.
최한기는 경험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실학의 철학적 기초를 확립한 개화사상의 선구자. 천문·지리·의학·농학·수학등에 모두일가를 이루었던 대학자로 『지구전요』 『신기통』 『농정회요』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밖의 조선조후기 삭령 최씨 인물로는 최헌중 (영조 대사간), 최우형(순조 대사성·예·형·공조판서) , 최성범 (여산목사) 등이있다.
최형민과 최연국부자는 한말 육영사업에 일생을 바쳐 추앙을 받았다. 삭령 최씨는 해방후에도 탄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최문경(전 경기도지사·외무부차관) 최세경 (전국희의원·문공부차관· KBS사장) 최병주 (일명인보· 전대법관· 전국회의원), 최성석(전국회의원) 최정자 (전국회사무총장) 최인철 (동양맥주회장· 야구협회장) 최인수 (전동양고무회장) 최성단 (풍진화학사장) 최진배 (증권감독원상임위원) 최진학 (대한의학협회부회장) 최만항 (전서울지법원장) 연예인 최희준씨등 많은 인사들이 사회 각계에서 활약한다.

<지명인사>-종친회 제공
▲최인보(2대의원, 전법관) ▲최문경(전 외무부차관) ▲최세경 (전 국회의원, 문공부차관, KBS사장) 최정우(전 국회사무총장) ▲최인철(동양맥주회장, 야구협회장) ▲최국지(강원대학장) ▲최진학(병원장, 의박) ▲최재룡(동아대 이과대학장) ▲최성우(전 국회의원) ▲최승범(전북대 교수) ▲최창영(한양대교수) ▲최성재(서울대 의대교수) ▲츼진성(문인) ▲최희준(가수) ▲최제민(재경종친회 명예회장) ▲최의태 (교박) ▲최강주(화학박사) ▲츼종범(미 캘리포니아대 교수) ▲최성일(변호사) ▲최민근(변호사) ▲최예진(대학교수) ▲최만행(전 서울지법원장, 변호사) ▲최효일(토지개발조합장) ▲최병인(매일유업 전무) ▲최운규(원예시험원 연구관) ▲최학경(현대정판사 회장) ▲최강원(서울대 교수) ▲최인장(부산대의대교수) ▲ 최성경(대종회종장) ▲최대경(향교전교) ▲최관민(군수) ▲최수경(군수) ▲최도철(원자력 연구관) ▲최삼경(전문공부 이사관) ▲최장우(홍익대 공대학장) ▲최도성(세종대강사) ▲최진배(세무대학장) ▲최진식(농박, 대학교수) ▲최덕광(공박) ▲최영희(의박) ▲최진석(동자부실장) ▲최위경(의사) ▲최금경(법원서기관) ▲최문경(검찰청 사무관) ▲최진갑(검사) ▲최진영(대학교수) ▲최도원(수원보훈청장) ▲최병의(서울대교수) ▲최남구(항공대교수) ▲최영희(이대교수) ▲최오경(창원대교수) ▲최진부(공박) ▲최홍경(의사) ▲최성지(판사) ▲최중현(검사) ▲최명희(소설가) ▲최성수(대종회 전도유사) ▲최진열(경남선관위 부위원장) ▲최오(실크로드제화사장) ▲최대경(충남대 의대교수) ▲최성강(풍진화학공업사장) ▲최인찬(경상대강사) ▲최차범(전도의원) ▲최석원(대종회 도유사) ▲최조의(해군대령) ▲최원영(농박) ▲최위경(전수산대학원장) <종친회 연락처 (267)6383)>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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