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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로 형님 있잖습니까” 윤필용·이후락 술자리 최후 (53) 유료 전용
육사 8기 출신인 윤필용은 박정희 대통령 사람이었다. 박 대통령은 5사단장 시절(1954년) 윤필용을 처음 만나 군수참모로 썼다. 이후 7사단장,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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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흑백사진 속의 풍운아 JP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1980년 공화당 총재 당시 모습. [중앙포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92세 일기로 별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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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식의 정치비사] 대통령 이야기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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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50년] "협상 앞둔 중국軍 백마 전투 필사적"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의 피해를 보고 불행해질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의 선봉에 섰던 김영선(金永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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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50년] "협상 앞둔 중국軍 백마 전투 필사적"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의 피해를 보고 불행해질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의 선봉에 섰던 김영선(金永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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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주일 前감사원장
28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주일(李周一) 전 감사원장은 5·16혁명에 참여했으면서도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또 중년 이후엔 조용히 장학사업에 전념했으며, 군대에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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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휴전선이 있었네] 8. '전선의 봄' 알리는 손짓대화
휴전선 답사 첫날, 우리를 태운 버스가 문산역을 지날 때 나는 역사(驛舍)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곳은 내가 35개월간 군대생활을 하면서 휴가 때마다 서울행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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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문제 의식적으로 보고 꺼려|15기 소장 때 중장으로 "파격진급"|25면에서 계속
완벽주의 자세는 청남대 건설, 연희동 사저 증축, 전직 대통령 경호규정 제정의 추진으로 이어졌고 그후 상당부분이 5공 비리의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완벽경호를 위해 지방 5곳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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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실 취직한 동생 경환씨|형이 실장에 부탁 즉각 승진
하루 교육이 끝나면 가끔 저녁때 부대 밖 시내로 셋이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곤 했죠. 그날도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는데 분명히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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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실장/전두환장군/숙명적 인간관계(청와대비서실:19)
◎특전동지로 “손과 발”/「권력의 핵」근처에서 상부상조/차,전장군 통해 육사인맥 장악/충성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10·26」으로 운명의 갈림길/경호실 취직한 동생 경환씨/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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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하나회(청와대비서실:12)
◎권력주변서 조직다져 결국 「12·12」로/전씨,용돈주며 후배들 “애로” 맡아 처리/동기 손영길·김복동과 주도권 다툼도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와 후견에 힘입어 탄생한 「하나회」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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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을 함께 뛴 「동신건설」장사장팀|6·25 전우가 차린『6중대』건설회사
6·25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이 다시 모여 건설회사를 차렸다. 당시 중대장은 사장이 되었고 소대장은 감사로, 선임하사는 관리부장, 통신병은 안전관리반장,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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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1)9기생과 월남전-제79화 육사졸업생들(184)
월남전에 참전한 9기생은 20여명에 이른다. 대령 또는 준장으로 연대장이나 참모 등의 직책을 맡아 활약했다. 윤성민장군(58·대장예편·현 국방장관)은 주월한국군사령부의 참모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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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1)-제79화 육사졸업생들(104)|장창국|정규7기의 활약상
7기생(정규)은 1백%가 일선 중대장 및 연대참모 등으로 6·25를 맞았기 때문에 누가 전공을 세우고 못 세우고의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사실 모두가 죽음을 초월한 전투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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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약력
◇생년월일 31년1월23일 ◇출생지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264번지 ◇현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302의3호 ◇학력▲47· 8=대구희도국민교졸업▲51·10·15=대구공고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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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전두환 장군 |청년 장교 때부터 지휘력 뛰어나|자상하나 의리 저버리면 서릿발
새 역사 창조에 신명을 바칠 것을 겨레 앞에 서약하고22일 예편한 전두환 장군은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의 구현을 자신의 국가 경륜으로 제시했다. 10·26사태 이전까지 만해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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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장 전역서 전문
장관님, 합참의장님, 각 군 총장님, 내의 귀빈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나는 오늘 지난30년 간 정들었던 군을 떠남에 있어 과거를 향한 숱한 감회와 미래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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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인들이 말하는 비극의 현장|밀고밀린 3년…산하도 모습을 바꿔
한세대를 마감하면서 6·25그날을 다시 맞는다. 낙동강을 배수진으로 압록강까지, 밀고 밀린 3년여. 수도서울을 두번이나 빼앗기고 뺏으면서 강마다 봉우리마다 삼천리강토는 피로 물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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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피 어린 산과 언덕(21)
편집자주=백마고지 전투는 본 연재 386, 387의 2회로 일단 끝을 맺었으나 당시 9사단 30연대 1대대장이었던 김영선 소장이 당시의 전투기록을 상세히 보내왔고 또한 당시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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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피 어린 산과 언덕(10)
1952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영국 「로이드」국무상은 그의 귀국담에서 『한국전쟁의 현 전황은 전 전선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휴전회담을 틈타 전력을 보강한 중공군이 일대공세를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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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피 어린 산과 언덕(1)
『지지도 말고 이기지도 말라』는 식의 「유엔」군 전략에 의한 작전이 전개되기 시작한 1951년 하반부터의 한국 전쟁은 중동부 산악을 중심으로 한 「고지 쟁탈전」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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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서빙고 도하|서울 수복 |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
미 제10군단 단장 「에드워드·M·아먼드」육군 소장은 미 해병대가 연희 고지 일대에서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남으로부터의 수도 포위 공적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미 제l해병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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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역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25)|영천회전(3)
1주일에 걸친 영천회전에서는 적 제15사단 전부와 8사단 일부를 완전히 섬멸했다. 특히 적 제15사단은 분대장 급 이상이 모두 중공군 출신의 정예부대로서 8월 공세 때에는 미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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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국군의 전선정비(6)
북괴군 최고사령부는 아군의 영동·함창·안동지역의 제2방어선을 격파하여 낙동강 이북과 이서 지구의 넓은 지역을 점령한 다음 급속도로 낙동강을 도하하여 8월15일까지는 남한 전역을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