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로 형님 있잖습니까” 윤필용·이후락 술자리 최후 (53)

  • 카드 발행 일시2023.11.17

육사 8기 출신인 윤필용은 박정희 대통령 사람이었다. 박 대통령은 5사단장 시절(1954년) 윤필용을 처음 만나 군수참모로 썼다. 이후 7사단장,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를 데리고 다녔다. 윤필용은 혁명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민정(民政) 이양 뒤 윤필용은 군으로 돌아가 육군방첩부대장(65년)을 거쳐 맹호부대장으로 월남에 다녀왔다. 그리고 70년 수도경비사령관(소장) 자리에 올랐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을 방위하는 수도경비사령부는 핵심 권력기관 중 하나였다. 당시 4대 권력기관으로 흔히 중앙정보부, 청와대 경호실, 군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를 꼽았다.

1968년 10월 주월 맹호부대(수도사단) 사단장에 임명된 윤필용 소장(왼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출국 인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계원 육군참모총장과 조상호 비서관. 윤필용은 72년 10월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너지게 된다. 사진 국가기록원

1968년 10월 주월 맹호부대(수도사단) 사단장에 임명된 윤필용 소장(왼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출국 인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계원 육군참모총장과 조상호 비서관. 윤필용은 72년 10월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너지게 된다. 사진 국가기록원

수경사령관에 오른 윤필용은 박 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군의 주요 보직과 장성급 인사까지 관여하면서 ‘참모총장 대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장·대장급 군 선배 상당수가 설날이면 윤필용의 집에 세배를 다녀갈 지경이었다. 윤필용의 수경사가 있는 곳을 가리켜 ‘필동(筆洞) 육군본부’라 칭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용어사전🔎 현대사 소사전: 수도경비사령부

1961년 6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 창설된 군사령부. 창설 당시 수도방위사령부였던 이름이 63년 12월 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됐다. 68년 1·21 사태 이후 대침투작전 임무가 추가됐다. 84년 군단급 부대인 현재의 수도방위사령부로 확장됐다. 수경사 30대대(그 후 30경비단)는 경복궁에 주둔한 청와대 근위부대로, 장교들의 출세 코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중령 시절 30대대장을 지냈다. 30경비단은 79년 12·12 사태 때 신군부 세력의 모의·지휘 장소로 이용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96년 30경비단은 33경비단에 통폐합돼 제1경비단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윤필용은 나와 육사 동기지만 그와 대화를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가까이 지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도 나는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박정희 의장과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 대해 ‘미구(未久)에 스스로 자리를 잃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