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50년] "협상 앞둔 중국軍 백마 전투 필사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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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의 피해를 보고 불행해질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의 선봉에 섰던 김영선(金永先.육사 7기.75)예비역 중장은 23일 휴전 5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전쟁 대비론부터 꺼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 국군 9사단이 중국군 38군과 일곱 차례에 걸쳐 뺏고 뺏기는 혈전을 벌이다 방어에 성공한 전투. 아군 3천여명과 중국군 1만4천여명이 희생됐다. 당시 소령으로 9사단 30연대 1대대장이었던 金장군은 중국군을 격파하고 고지를 완전 탈환했다.

"이 전투에 참가해 다른 부대에 부끄럽지 않게 승리한 것은 다행이지만, 전사한 부하들을 생각하면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죄스러운 마음이다."

전투 당시엔 수류탄을 껴안고 적진에 돌진해 산화한 장병도 있었고, 최초에 고지에 돌입한 대원이 10명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아군의 피해도 컸다.

金장군은 "52년에는 휴전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면서 "유엔군과 북한.중국군은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백마고지 점령에 전력을 쏟았다"고 말했다. 백마고지는 해발 3백95m의 작은 산등성이지만 철원평야를 통제하는 요충지다.

그의 둘째아들인 현수(賢洙.육사37기.45)씨는 현역 군인(대령)이다. 현재 국군체육부대 참모장인 그는 9사단 28연대장에 내정돼 곧 백마맨의 대(代)를 잇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부대 운영이나 전투는 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간직하면서 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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