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미,4·19 반년전 이박사에 하야 권고"|4·19당시 미국공사「마셜·그린」의 증언

    「아이젠하워」미대통령은 4·19가 일어나기 반년전인 59년 여름 친구인「월터·저드」하원의원을 한국에 파견, 이승만박사에게 후계자를 키운후 하야하라고 권고했다고 4·19와 5·16당

    중앙일보

    1986.04.19 00:00

  • "한달 후면 올테니 집 잘보게"|이박사 망명길 지켜본 우석근씨의 증언

    『대통령은 새벽1시에 망명을 결심했다-』 지금으로부터 26년전인 1960년5월29일 4·19혁명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 망명길에 오르기 위해 그의 사저인 이화장

    중앙일보

    1986.03.1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제84화로 일시 휴재

    중앙일보의 최장기 인기 연재물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다. 새로운 비화와 남겨야 할 이야기들을 발굴, 정리하기 위한 충전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남기고

    중앙일보

    1986.02.26 00:00

  • "이승만박사 동상 국내에도 세워야"

    지난 8월15일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자리잡은 한인기독교회 뜰에 이승만박사의 동상이 제막되었다. 그것은 실로 광복 40주년, 이박사 서거 20년, 탄신 1백10주년만에 조국에서

    중앙일보

    1985.08.24 00:00

  • 이승만박사 동상건립계기로 하와이 현지좌담|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긴다

    -이박사서거 20년만에 그분이 직접 세운 하와이 한인교회 뜰에 동상이 세워졌읍니다. 이번 동상건립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요. ▲윤=작게는 하와이 교민사회의 새로운 화합을 위한 것이고

    중앙일보

    1985.08.21 00:00

  • 이박사 시절

    초대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20년이 된다. 65년 7월19일 하와이의 마우나라니 병원 202호실에서 그는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국민치고 그를 모르

    중앙일보

    1985.07.19 00:00

  • 전대통령·3당대표 회동 무슨말이 오갔나

    ▲전대통령=오랜만입니다. ▲이민우 신민당총재=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우 국민당총재=이번 방미에서 많은성과를 거둔것을 축하드립니다. ▲전대통령=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특별한

    중앙일보

    1985.05.03 00:00

  • 권문교 "교육헌장 기념식 잘됐다" 자독에 장내폭소

    권업혁문교부장관은 지난5일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식에 참석한 이해원국회문공위원장을 비롯,국회의원과 이수동 경남교육감등 시·도교육감, 문교부실·국장 전원등 60여명을 오찬에 초대한 자리

    중앙일보

    1984.12.0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80화 한일회담 (101)|김대사의 고충

    김유택 주일대사와「오오노」(대야) 일본외무차관은 「기시」일본수상의 방미등정 하루전인 57년6윌15일 제4차 한일회담을 9월2일 열기로 하는등 양국현안에 관해 완전 합의했다. 53년

    중앙일보

    1983.12.26 00:00

  • (3893)제80화 한일회송(92)

    한일회담이 교착된 55, 56년 2년간 나는 이대통령의 엄명에 따라 주한미대사관측과 한미우호통상및 항해조약체결에 진력해 56년 가을에는 그 서명절차만 남겨두었다. 이대통령은 그 조

    중앙일보

    1983.12.15 00:00

  • (3880)제80화 한일회담(79)-김동조

    최근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요가 널리 애창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방송을 통해 이 노래를 몇번들었는데 그때마다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에 젖게된다. 지금

    중앙일보

    1983.11.30 00:00

  • 서울과 워싱턴에서 열번대좌 우의굳혀

    건국이후 지금까지 한미정상간의 교환방문은 각각 5차례로 모두 10번에 이른다. 비공식접촉까지 포함하면 13차례 있은 양국 정상간의 교환중 대부분의 경우 양자간에는 큼직한 현안을 다

    중앙일보

    1983.11.10 00:00

  • (3827) 제80화 한일회담(26) 예비회담(4)

    30일부터 시작된 2개 분과위의 교섭내용은 잠시 뒤로 미루고 그간에 있었던 한 두개 기억나는 주변담을 더 소개하고자 한다. 분과위가 시작된 다음날인 31일 하오 양대표의 「요시다·

    중앙일보

    1983.09.29 00:00

  • (3823) 제80화 한일회담(22) 일본으로의 출발

    한일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유찬주미대사가 피난임시수도인 부산에 도착한 것은 대표단이 동경으로 떠나기 3일 전이었다. 나는 수석대표에게 최소한 회담에서 토의될 여러 문제의 내용을

    중앙일보

    1983.09.24 00:00

  • 충주지씨|고려때 「11대 36평장사」내며 융성

    지씨는 충주단일본이다. 문헌에는 충주외에 단양·광주 두본과니 보이나 모두 충주의 분파. 그밖에도 충주어씨가 지씨 조상에서 어씨 성을 받아 분가한 한핏줄의 다른 성씨다. 시조는 고대

    중앙일보

    1983.09.03 00:00

  • 다시 본 이 박사

    인격은 어둠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중앙일보에 실리고있는 「프란체스카」여사의 비망록을 보면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멀리서, 혹은 남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듣고 보

    중앙일보

    1983.06.28 00:00

  • (1)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이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발발 33주년―. 수도서울을 적의 수중에 넘겨주고 치욕적인 후퇴와 후퇴의 거듭끝에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보루로 서울수복까지 고난과 파란의 전시국가를 이

    중앙일보

    1983.06.24 00:00

  • 64년전「한성정부공채」거의 보관희망|하와이서 상환업무맡았던 오중정씨 내한

    지금으로부터 64년전인 1919년 「대한민국 정부 집정관 총재 이승만」과「구미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행된 「대한민국 공채」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해달라는 요청이 한 미국 하와이 교민

    중앙일보

    1983.05.31 00:00

  • (146)-자유당과 내각(39)

    자유당의 비극적 종말을 장기집권과 그것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폐단들에 연유한다. 자유당의 장기집권은 이대통령의 3선을 밀고갔던 사사오입개헌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니까 그 개헌은 중

    중앙일보

    1983.04.30 00:00

  • 자유당과 내각

    족청 거세가, 이대통령이 족청을 두려워한 소치가 아니듯이 이기붕도 족청거세에 앞장선것은 아니다. 족청과 비족청계가 자유당안에서 벌인 권력투쟁은 원내와 원외의 투쟁이었다. 신두영씨는

    중앙일보

    1983.04.27 00:00

  • 중앙청 자유당과 내각(33)

    자유당의 이기붕시대는 족청의 거세에서 그 길이 열려갔다. 그 때문인지 족청의 거세는 이박사가 족청의 세력성장을 경계해서 내린 조처라는것이 정세처럼 되어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잘못된

    중앙일보

    1983.04.13 00:00

  • 서울역 그릴·열차식당서 40년|정년퇴직하는 웨이터 장금목씨

    서울역 그릴과 열차식당에서만 40년2개윌, 1만4천6백여날을 손님들의 양식(洋食)식사 시중을 들며 살아온 우리나라 최고령의 현역 웨이터가 정년을 맞아「천직」을 떠나게 됐다. 금목씨

    중앙일보

    1983.04.11 00:00

  • (139)자유당과 내각(32)

    국무회의는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체로 알려져 있지만 내막은 그렇지도 못하다. 제헌헌법서부터 국무원은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거의 예이없이 대

    중앙일보

    1983.04.09 00:00

  • (138) 만찬자리서 한각료가 7분도쌀 예찬 이박사 "당장백미단수" 지시

    정부장관들의 일처리는 어떤 방식들이었을까.이대통령시대의 단면을 볼수있는 일화 몇가지를 욺겨본다. 농림 신중목씨의 회고. 『농림장관때 2년의 잇딴 흉년으로 외미를 도입치 않을수 없었

    중앙일보

    1983.04.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