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79)경무대 사계(106)우제하(제자 윤석오)

    오랜 투병 끝에 이 박사는 65년7월19일「하와이」의 「마우날라니」병원에서 서거했다. 만90세.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된 파란과 영욕으로 점철된 생애였다. 「프란체스카」부인과,

    중앙일보

    1972.06.07 00:00

  • 정당집무 시작한 미 대사

    백두진 국회의장은 신민당소속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난 2일이래 5일까지 소재를 밝히지 않은 채 비서실을 통해 단식중인 김홍대 신민당 당수의 건강을 염려하는 전화

    중앙일보

    1972.06.05 00:00

  • 2명 추가 구속

    각종 조합 등 단체수사를 벌여온 전국 경찰은 4일 부산어업조합 충무동 위탁중계인협회 회장 이도우씨 등 2명을 추가 구속하고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상무이사 이태구씨 등 10개조합의 1

    중앙일보

    1972.05.04 00:00

  • 메아리 지는 「이군 돕기」… 성금 계속

    재생 불량성 빈혈증으로 고생하는 이상기군(19)을 돕자는 각계의 온정은 19일에도 곳곳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19일 서울 인창고교(교강 서용택) 학생들은 「세브란스」병원 혈액은행

    중앙일보

    1972.02.19 00:00

  • 부정세리 넷 구속

    부정세무공무원 일제단속에 나선 서울시경은 26일 광화문 세무서 개인세과 직원 한명교(24), 성북세무서 개인세과 직원 이영근(42), 노량진세무서 서병갑(48), 노량진세무서 전흥

    중앙일보

    1972.01.26 00:00

  • 두 아들 졸업식 날 아버진 순직

    아들 형제의 졸업식 날 과로 끝에 순직한 서울 광화문 파출소장 정성봉 경감(46·추서)의 장례식이17일 종로 경찰서서장으로 엄수되었다. 이날 장례식에는 셋째 아들 진군(16)은 고

    중앙일보

    1972.01.17 00:00

  • 날치기단 두목은 전 수사관이었다|「롤렉스」시계만 털어 온「김상사 파」범행 전모

    지난여름 외국 관광객을 비롯한 서울 시내 「롤렉스」팔목시게만 전문적으로 털어 온 1금 날치기단 김상사파의 두목 김병민(44·종로구 소격동125)이 경찰에 체포돼 이들의 범행 전모가

    중앙일보

    1971.12.13 00:00

  • (258)형정 반세기(1)|권영준(제자는 필자)

    필자 권령전씨(70)는 기미독립운동 사건의 소용돌이가 채 가시지 않은 1922년에 서대문 감옥의 간수가 되어 8·15해방을 맞기까지 신의주·전주 원산 등지의 형무소에서 근무했다.

    중앙일보

    1971.09.15 00:00

  • 헌혈협서 범국민운동 벌여

    한국헌혈협회는 15일부터 오는 11월15일까지 2개월 동안 범국민 헌혈「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광화문 지하도에 「헌혈의 집」을 마련해 놓고 매일 상오10시∼밤10시까지 시민들의

    중앙일보

    1971.09.14 00:00

  • 질 가뭄 속 낭비언어들|이달의 시-고은

    시 비평이란 시를 발견하려는 고통을 언제나 전제한다. 불황의 시단이다. 거의 저질 시로 시단이 메워졌다. 그것은 우수한 시를 대조적으로 예상케 하는 일에만 목적이 있는 언어의 오물

    중앙일보

    1971.08.13 00:00

  • 기대 속에…경축 속에…|7대 대통령 취임하는 날

    『자유와 평화의 복지 낙원을 이루려는 높은 뜻을 펴게 하소서』-1일은 앞으로 4년,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제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하오 2시 중앙청 앞 광장에서는 「팡파르」

    중앙일보

    1971.07.01 00:00

  • (187)방송 50년(16)이덕근

    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 할 때까지 우리말을 마지막까지 사용할 수 있던 곳은 오직 제2방송과 뿐이었다. 그래서 제2방송과장인 이혜구씨는 언제나 부하직원들에게『여기는 우리말

    중앙일보

    1971.06.23 00:00

  • 백 의장, 인사 기록 들고 순방

    박정희 총재로부터 당 요직 인선협의를 지시 받은 백남억 공화당의장은 6일 저녁과 7일 아침에 걸쳐 장경순 국회부의장·길재호 사무총장·윤치영·정일권 총재 상임고문을 차례로 만나 의견

    중앙일보

    1971.06.07 00:00

  • (181)-서울수복행정과 치안|「6.25」20주 3천여 증인회견 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

    정부의 환도가 전격적이었던 만큼 이에 따른 수도의 행정과 치안질서의 회복도 빨랐다. 정부는「유엔」군의 인천 상륙 직후에 서울수복에 대비하여 30여명의 행정수복요원을 비밀히 임명,

    중앙일보

    1971.05.29 00:00

  • (179)시가전(하)

    9월27일 하오까지 국군과 미군은 서울시를 거의 탈환했다. 동북교외에서는 아직 산발적인 소탕전이 계속됐지만 서울시에서의 적의 조직적인 저항은 27일 하오를 기해 끝났다. 불타지 않

    중앙일보

    1971.05.24 00:00

  • (178)|시가전 |서울 수복 (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9월25일 저녁에 적의 서울 방어 주저 항선은 무너졌다. 미 제5해병 연대와 한국 해병대는 격전 끝에 연희고지 일대의 「서부 방벽」을 돌파했고 미7사단 32연대와 한국군 17연대는

    중앙일보

    1971.05.21 00:00

  • 어린이 1명 절명 범인은 음독중태

    금전관계로 시비끝에 사촌동생과 이웃 어린이2명을 칼로 찌르고 달아났던 함태량씨(33· 영등포구 목동164)가 4일 상오 10시쯤 광화문지하도입구에서 극약을 먹고 쓰러져 신음 중인

    중앙일보

    1971.05.05 00:00

  • 집을 피해 다니는 유당수

    ○…공화당 공천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후보자 추천서와 얼마만큼의 「기름주머니」를 받아들고 각기 선거구에 내려가 3일부터 등록을 시작했다. 공천자들은 2일 당중앙당훈련원에 모여 중학·

    중앙일보

    1971.05.03 00:00

  • (145)-양식복장(제10화)

    양복이 일반에 보급될 초기의 양복점은 외국인에 의하여 경영되고 제품 되었다. 처음에 서울에는 중국인 경영의 양복점이 판을 쳤다. 정동에 있는「복장」 양복점은 주로 고급관리를 장대

    중앙일보

    1971.05.03 00:00

  • (142)양식 복장(9)|이승만(제자는 필자)

    특수 계층의 양장 여성을 제외하면 일반 여성의 경우, 양식화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그 앞장을 선다. 그러나 남 학도들이 모자로부터 양식 복장을 갖췄던데 비하면 여 학도들의 그것은

    중앙일보

    1971.04.28 00:00

  • (1)집터마련

    앞으로 5년 후 1976년 서울의 인구는 7백50만 명이 되리라고 전문가들은 계산하고 있다. 현재 서울 인구는 5백59만7천여 명. 그러나 가옥은 판잣집까지 합쳐도 50만 호가 못

    중앙일보

    1971.02.15 00:00

  • 실종 4대독자 집에 괴전화

    4대 독자를 잃어 비통에 잠겨있는 김경태씨(41)집에 협박편지와 괴전화가 잇달아 가뜩이나 슬픔에 잠긴 부모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7일상오 8시쯤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로 『마포구

    중앙일보

    1971.01.09 00:00

  • 한국 건축에 남긴 몇 가지 신기록들|첨단 공법의「매머드」정부 종합청사

    중앙청 앞 정부종합청사는 준공을 앞두고 마감 손길이 한창이다. 철근「콘크리트」기둥을 올릴 때 하도 속도가 빨라서 시민의 눈길을 모았던 이 건물은 새로운 공법을 구사하여 이채롭다.

    중앙일보

    1970.12.02 00:00

  • (100)적치하의 3개월(13)

    (1) 불의에 적치 하에 갇혔던 일부 인사들 중에는 소극적인 지하잠복보다는 생사를 걸고 적극적인 방법인 탈출을 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서 대구까지 7백50리를 문자 그대로

    중앙일보

    1970.11.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