物腐蟲生<물부충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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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27면

초(楚)나라 항우(項羽)는 홍문(鴻門)에서 유방(劉邦)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연회를 베풀어 유방을 끌어들인 뒤 단칼에 베자는 책사 범증(范增)의 책략은 잘 맞아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항우는 우유부단했다. 다 잡은 유방을 놓아주고 말았다. 호랑이 굴에서 빠져나온 유방은 항우와 범증을 떼어놓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이간책을 쓴다. 범증이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항우는 그 소문에 넘어가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범증은 그렇게 항우 곁을 떠났고, 유방은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송(宋)나라 시인 소식(蘇軾)은 이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물건은 반드시 부패하니, 그 속에서 벌레가 생긴다(物必先腐也,而後蟲生之). 사람은 의심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그 후에 상대를 모함한다(人必先疑也,而後讒入之).” 항우의 어리석은 의심이 범증을 버렸고, 결국 형세를 망쳤다는 탄식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물부충생(物腐蟲生)’이다. ‘모든 문제는 내부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물부충생’이 요즘 중국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최근 최고 권력에 오른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이 단어를 쓴 뒤부터다. 그는 지난 17일 고위 관리들이 참가한 집단학습에서 “물건은 썩으면 반드시 벌레가 생긴다”며 “부패가 드러나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패척결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바로 그 다음 날 가족의 축재(蓄財) 문제로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마디 했다. 그는 “임기 중 ‘내 마음의 선한 일은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 ‘청렴결백하게 살고 바르게 죽는 것을 옛 성인은 중하게 여겼다(伏淸白以死直兮, 固前聖之所厚)’라는 두 구절을 마음속으로 항상 읊고 있다”고 했다. 모두 전국시대 시인 굴원(屈原)의 시 이소(離騷)의 구절이다. 굴원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억울함을 호소했던 시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속내를 밝힌 것이다.

새로 권좌에 오르려는 자와 권력을 내주고 떠나야 하는 자는 부패를 보는 시각도 그렇게 달랐다. 쫓고 쫓긴다. 사물이 반드시 썩듯, 정치 권력도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 아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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