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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들어간 기능성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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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중랑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키넥트 게임기를 이용해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이 공사에 들어가 야외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동작 인식 게임기를 수업에 활용한 사례다.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지난달 17일 서울 중랑초등학교 3학년 2반 교실. 체육 수업 중인 이 학급이 오늘 배우는 내용은 ‘여가 활동-스키 즐기기’다. 스키 장비와 안전 수칙, 원리에 대해 설명을 마친 조주한(39)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운동할 준비할까요?”

 28명의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책상과 의자를 뒤로 밀고 교실에 공간을 만들었다. 교실 앞 대형 화면에 선생님이 틀어주는 댄스 게임을 따라 학생들이 가볍게 춤을 추자 쌀쌀한 날씨에도 교실 안은 금세 후끈해졌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선생님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하얀 눈이 덮인 스키장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4명씩 나와 화면을 보며 허리를 굽히며 자세를 잡았다. 화면 속 캐릭터가 돼 깃발을 통과하고 장애물을 피하면 움직임의 정확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끝나고는 자동 녹화된 영상을 보며 실제 자세를 확인했다. 가을날 교실 안에서 즐기는 스키 수업이었다.

 3학년 2반은 지난 학기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작 인식 게임기 ‘키넥트’로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말 운동장에 지하 주차장과 체육관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970명 전교생이 사용해야 하는 운동장 공간은 반쪽이 됐고, 체육수업은 대부분 실내 이론수업으로 대체됐다. 운동량이 줄어든 아이들이 안쓰러웠던 조 교사는 지난 6월 자신이 집에서 사용하던 키넥트 게임기를 학교에 가져와 교실의 대형 화면에 연결해봤다. 다행히 아이들은 움직임을 인식하는 체육 게임을 즐거워했고 수업 집중도도 부쩍 높아졌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 배구와 줄넘기는 물론 사칙연산 연습까지 익혔다.

 학생들은 “애니팡이나 온라인게임보다 몸을 움직이며 하는 게임이 더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성재경(10)군은 “컴퓨터게임은 앉아서 마우스만 쓰니까 하다 보면 손목이 아팠는데 몸 전체를 쓰니까 더 재미있고 활기차다”고 즐거워했다. 이민서(9)양은 학급에 비치된 키넥트로 운동하려고 한 달 전부터는 등교 시간을 30분 앞당겼다. 통통한 체형의 민서는 체육을 싫어했는데 지난달 키넥트로 한 줄넘기 점수가 반에서 1등을 차지해 친구들의 박수를 받은 뒤로는 체육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조 교사는 “학급 전체가 즐거워하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교실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며 “체벌이 금지된 뒤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없어 애를 먹었는데 게임이 생활지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게임을 적절히 사용하면 칭찬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던 습관도 자연스럽게 교정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사가 게임을 활용한 수업 동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리자 초등학교 교사들의 질문 메일이 쏟아졌다. MS에서도 동영상을 보고 조 교사에게 연락해 학급용 키넥트와 대형 화면을 지원해줬고 지난달에는 조 교사를 강사로 초빙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키넥트 교육 활용 세미나’도 열었다.

 중랑초의 체육 수업은 기능성 게임 활용의 한 예다. 기능성 게임은 성과에 따라 보상을 주고 집중력과 동기를 부여하는 게임의 순기능을 살려 교육·의료·스포츠 같은 분야에 적용하는 것으로 전 세계 9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다. 미국에서도 정부와 비영리단체들의 투자로 다방면의 기능성 게임이 제작되고 있다. 미국 여성 최초로 연방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학생들이 역할수행게임(RPG)으로 미국 역사·헌법·시민윤리를 배울 수 있는 ‘아이시빅스’를 개발했다. 지난해 출시된 이 게임은 미국 내 1만2000개 학급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교육·의료·노인용 기능성 게임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지난 8월 호서대 김경식(게임공학) 교수는 노인들이 실내에서 운동과 기억력 강화 훈련을 할 수 있는 기능성 게임 ‘팔도강산2’를 개발했다. 팔걸이와 발판 컨트롤러를 이용해 걸으며 즐기는 게임으로, 전국의 명승지를 구경하거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내용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 다음 달부터 서울 지역 사회복지관에 이 게임을 보급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전문가들이 기능성 게임을 개발해도 일선 교사나 의사들이 외면하면 좋은 콘텐트가 사장되고 말 것”이라며 “이젠 ‘게임은 나쁜 것’이란 선입견을 바꿔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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