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못박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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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서까래와 도리에 쇠못이나 나무못을 박는다는 것은 그것들이 비틀리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못을 박다’는 ‘어떤 사실을 꼭 집어 분명하게 하다’ ‘단호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하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못을 박다’는 이런 뜻의 관용구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문, 단일화 시한 못박고 … 안, 민주당 혁신 동의 끌어내’.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문’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이고, ‘안’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가리킨다. 바로 이 제목에서 ‘못박고’가 ‘어떤 사실을 꼭 집어 분명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현행 표기법대로라면 ‘못(을) 박고’로 띄어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제목에서는 띄어쓰기를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제목에서 ‘못박고’를 표기법에 맞게 ‘못 박고’로 띄어 쓰면 순간적으로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완전히 없지는 않다. 물론 기사 내용을 읽어 보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겠지만, 얼핏 제목만 읽어서는 ‘못 박고’를 ‘박지 못하고’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즉 ‘못(nail)’을 ‘못(can not)’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못(을) 박다’(어떤 사실을 꼭 집어 분명하게 하다)를 신문에서는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오랫동안 띄어 쓰지 않고 붙여서 ‘못박다’로 써 왔다. “검찰과 경찰이 개최한 ‘수사권 조정 공청회’의 쟁점은 검경의 위상을 지휘복종 및 상명하복 관계로 못박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195조, 제196조의 개정 여부다.”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분명하게 못박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테스트 칩 단계라 양산(量産) 시기를 못박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못(을) 박다’는 이렇게 쓰일 경우 이제는 관용구의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못박다’라는 한 단어로 따로 독립시켜 주더라도 괜찮을 듯하다. 이미 연세한국어사전은 표제어로 실었다. 이와 같은 구조의 단어로 ‘공들이다’ ‘빚지다’ ‘죄짓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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