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재인·안철수, 최악의 단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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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문재인·안철수 야권 두 후보가 요즘 벌이는 후보 단일화 게임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다.

 문·안 후보는 어제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법을 놓고 ‘마지막 담판’을 시도했으나 결렬됐다. 문재인 후보 측은 ‘마지노선’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결국 그 선을 넘었다. 마지막이건 마지노선이건 이제 두 후보의 약속과 다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두 후보는 보름쯤 전 후보 단일화 7개 항을 발표하면서 공식 후보등록일(25~26일)까지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설사 오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여론조사 방법에 합의한다 해도 여론조사기관을 선정하고, 구체적으로 문항을 다듬고, 공정조사감시기구를 만드는 데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돌발적인 사고라도 발생하면 26일까지 약속을 못 지키는 건 물론 대선판 전체에 극도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문·안 후보가 단일화에 임하면서 ‘당신이 양보하라. 나는 양보 안 한다’는 이기주의를 깔고 협상에 임했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숱한 고민 끝에 자신을 당 후보로 뽑아준 민주당의 소멸을 각오하고 협상에 임했다. 정몽준 후보는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을 보면서도 협상팀이 합의해 온 여론조사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노무현 후보의 희생성과 정몽준 후보의 신사적인 태도가 단일화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을 희생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양보하는 맏형론’으로 이미지 장사만 했고, 안철수 후보는 협상팀을 틀어쥐고 끝없이 벼랑끝 협상을 압박하는 신사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두 후보가 2002년과 달리 여론조사 방식에까지 끼어드는 쩨쩨한 모습도 단일화를 꼬이게 만든 요인이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야권후보는 협상팀을 통해 역할분담·공동정부·내각제개헌의 수십 쪽짜리 정당협약문을 만든 뒤 후보 간 담판을 진행해 11월 1일 일찌감치 질서 있는 단일화를 완성했다. 올해 대선처럼 졸속·부실·맹탕·혼란·이기심에 가득 찬 후보 단일화는 없었다. 문·안 후보는 ‘아름다운 단일화’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단일화’ 같은 수사를 동원하고 있으니 사상 최악의 단일화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악의 단일화 과정을 초래한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여론조사라는 비정상적 방법으로 대선 후보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야권에서조차 제비뽑기 단일화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비과학적이고 비헌법적이다. 두 사람은 다음 대선 때부터라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단일화 방식을 내놓기 위해 결선투표제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둘째, 26일 법정등록일까지 단일후보를 정하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이 깨지면 더 이상 미련 갖지 말고 자기 가치대로 대선을 치러야 할 것이다. 투표용지 인쇄일이 12월 10일이니 그때까진 단일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식의 꼼수의식이 꿈틀거리는 모양인데 또다시 대선 일정을 헝클어뜨리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