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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나무를 키우는 햇살 어린이집’

중앙일보

입력

‘나무를 키우는 햇살어린이집’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마당의 나무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곳에서는 마을과 부모, 교사가 함께 힘을 모아 아이를 키운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아이를 길렀지만 지금은 그걸 기대하기 힘들죠. 공동육아는 옛 마을의 역할을 되살리는 개념입니다.”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강곤(40·덕양구 행신동)씨의 말이다. 공동육아는 말 그대로 마을(공동체)·부모·교사가 함께 아이를 기르는 것을 뜻한다. 강씨의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의 ‘나무를 키우는 햇살어린이집’을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17개의 가정과 교사들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집 마당에선 아이들이 모래놀이에 한창이다. 어린이집 바로 앞에는 공터와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탁 트여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이곳이 바로 공동육아의 ‘터전’(이곳의 엄마아빠들은 이 어린이집을 그렇게 부른다)이다.

4~7세 어린이 20명이 여기서 함께 생활하고, 절반 이상이 같은 마을에 산다. 이곳의 하루는 오전 8시,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등원하면서 시작된다. 나이에 따라 반이 편성되며 하루 일과는 같은 반 아이끼리 모여 결정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나들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디에 갈 것인지는 아이들이 정한다.

터전의 하루 일과는 교사에 의해 ‘날마다 적는 이야기(이하 날적이)’에 기록된다. 지난 해 11월 일반 어린이집에서 이곳으로 아이를 옮겨온 강씨는 “일반 어린이집에도 알림장이 있는데 3줄 정도, 그것도 형식적인 기록에 그친다. 하지만 날적이에는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와 변화된 부분 등을 적는다”고 설명했다. 차곡차곡 모은 날적이는 아이의 성장일기가 된다. 큰 딸 진하(6)가 4살 때부터 공동육아에 참여한 김다정(34·덕양구 내곡동)씨는 “3년 동안 11권의 날적이를 적었는데 아이의 역사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공동육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관계다. 아이는 터전에서 친구·언니·오빠·동생 등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낮잠 시간에는 나이가 많은 아이가 동생뻘되는 아이 방에 가서 한 이불을 덮고 함께 잠든다. 외둥이로 자란 아이들게 이러한 경험은 형제·자매애에 눈을 뜨게 한다.

친구집에 놀러가는 마실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와 장난감을 나누고 같이 놀면서 동료애가 싹튼다. 터전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일이 늦게 끝나거나 급한 일이 생겨도 걱정이 없다. ‘우리 아이에게 마실해 줄 사람’이 된 다른 부모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집으로 데리고 가 저녁을 먹인다. 김다정씨는 “아이를 맡기는 부모도 아이를 맡아주는 부모도 전혀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관계는 단순히 또래 친구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교사와 친구의 부모도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

이곳에서 아이는 어른에게 평어를 사용한다. 언어의 틀에 갖히지 않고 어른에게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어른은 아이에게 나이가 많은 친구가 된다. 어른에겐 ‘엉금이’ ‘칙칙이’ ‘폭폭이’ ‘꽃잔디’ 같은 애칭이 있는데 아이들은 어른을 부를 때 이 애칭을 사용한다.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서운한 사연을 다른 친구의 부모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연을 체험하는 것 역시 공동육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다. 터전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놀며 자연과 한몸이 된다. 터전의 하루 일과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나들이다. 날마다 주변에 있는 낮은 동산과 초등학교, 공터로 나들이를 떠난다. 아이들은 자신이 찾는 동산과 공원에 토끼공원, 바람계곡, 네모무덤 같은 이름을 지어준다. 이런 자연체험 프로그램에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올해 처음으로 아들 정현(4)이를 터전에 보낸 김희숙(32·내곡동)씨는 “평소 공동체와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았다”며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기게 할 수 있어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터전 앞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기른다. 편식을 하던 아이들도 자신이 기른 채소는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마당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다. 공동육아의 특성상 바깥활동이 많은 만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마당은 필수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전래놀이도 하고 모래놀이도 한다.

공동육아에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들은 운영·시설·재정·교육홍보 4개의 소위원회 중에서 하나를 정해 활동하는데, 매달 한 번씩 회의를 연다. 또한 같은 방 아이의 부모와 선생님이 모이는 회의도 한 달에 한 번 열린다. 청소와 교사 대신 가르치는 재능기부 활동도 부모의 몫이다. 이렇게 함께 활동하는 사이 부모들의 관계도 끈끈해진다. 주말이면 텃밭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밭을 일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또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요리를 해먹으며 주말을 함께 보낸다. 다른 부모에게 육아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엄마에게 맡긴 채 아이의 양육에 소홀하던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공동육아의 큰 소득이다.

<송정 기자 asitwere@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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