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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앙숙 하동-광양, 재첩 갈등 씻고 형제동네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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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남 광양 토박이인 서순열(51)씨는 섬진강 건너편의 경남 하동을 제2의 고향으로 꼽는다. 고교 시절에는 매일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하동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동창들을 만나러 하동에 출타하는 일이 잦은 서씨는 요즘 특히 신바람이 나 있다. 30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고양시의 킨텍스에 광양시와 하동군이 공동으로 장터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매실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기꺼이 공동장터 출품을 결정하고 부인과 함께 부지런히 매실김치를 담그고 있다. 서씨는 “원래 광양과 하동은 서로 왕래가 잦고 생활권이 겹치는 형제 같은 사이인데도 언제부턴가 두 지역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화합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섬진강 양쪽의 광양과 하동이 한때의 갈등 관계를 청산하고 상생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광양·하동 공생발전협의회’가 출범한 이후의 변화다. 사상 처음 수도권에서 공동장터를 열기로 한 것도 공생발전협의회가 노력한 결과다. 내년 2월부터는 광양과 하동의 주요 관광지에 상대 지역의 관광지를 홍보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하동과 광양의 협력 무드는 섬진강 명물인 재첩 채취를 둘러싼 갈등을 화합으로 승화시킨 결과다. 양측 주민들은 재첩 수확기인 5~10월만 되면 갈등을 빚어왔다. 해마다 30억원대의 수익을 안겨주는 재첩 어장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대립하다 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두 지역 사이에는 원래 합의된 경계선이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섬진강 유량이 줄고 재첩 서식지가 계속 상류로 이동함에 따라 경계선 침범 여부를 놓고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이를 지켜보다 못한 두 지자체는 주민 화해를 위해 지난해 11월 공생발전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광양과 하동이 더 이상 행정구역상의 경계에 묶여 반목을 해선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이다.

 출범 한 달여 만에 재첩 채취 경계수역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두 지자체는 본격적으로 상생의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보니 섬진강 살리기를 위한 공동 사업 추진과 매실산업 공동 육성, 경전선 폐철도 공동 활용, 섬진강 포구 80리 둘레길 조성 등의 협력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년 8월부터는 두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 등 60여 명이 합동 워크숍을 여는 등 관광협력을 강화한다.

 조문환 하동군청 기획팀장은 “공동장터 운영과 관광 안내판 교차 설치 등 실질적인 협력 관계가 두터워지고 있다”며 “함께 힘을 합쳐 섬진강의 경관 보존과 경제·문화발전을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양 지자체의 상생 움직임에 국토해양부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유병권 부산국토관리청장과 구자명 익산국토관리청장은 지난 15일 이성웅 광양시장, 조유행 하동군수 등과 간담회를 하고 협력을 약속했다. 구자명 익산국토청장은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섬진강 주변의 도로사업과 섬진강 자전거길, 하천생태공원 조성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광양·하동=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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