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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게임 열기, 왜 식히려고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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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게임중독 청소년의 뇌는 마약 중독 상태와 같으며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

 안철수 후보가 지난 11일 발표한 ‘안철수의 약속’ 중 ‘아동·청소년을 위한 건강한 미디어 환경 조성’ 부분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게임을 청소년 폭력과 정서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담겼다. 게임업계는 ‘안철수, 너마저’를 외쳤다. IT업계를 잘 안다는 안 후보마저 게임을 이렇게 규정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안 후보 캠프는 곧 진화에 나섰다. 13일 공식 트위터에 “삭제하기로 한 내용이 편집상 실수로 게재됐다”며 사과했다. 정연순 대변인도 “게임을 문화의 한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고 논평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사회 주류라면 응당 그러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인가 싶어 씁쓸했다”고 했다.

 ‘주류의 시각’으로라면 13일 밤의 열기야말로 위험천만하다. 이날 블리자드코리아가 스타크래프트 게임 국내 팬들을 위해 연 파티는 500여 명의 게이머로 밤 11시가 넘도록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창업주가 나타나자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중앙일보 11월 15일자 경제 3면). 보통 기업이 신제품 출시회를 열면 값비싼 선물과 고급 식사를 제공하며 ‘파워 블로거’들을 동원한다. 하지만 이날 팬들은 음료수만 주는 이 파티에 4 대 1 이상의 경쟁을 뚫고 당첨돼 모였다.

 열기, 목표 도달을 위한 노력, 협동과 경쟁…. 이런 것들은 게임의 본질이다. 그런데 정책 당국은 ‘게임 중독을 막는다’며 이를 문제 삼아 왔다. 여성가족부가 얼마 전 발표한 ‘게임물 평가 척도’는 오래 하고 싶을수록, 여러 명이 협동할수록 유해한 게임으로 봤다.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며 초콜릿에 ‘네 달콤함을 반성하라’는 식이다.

 게임은 취미다. 집중과 동기 부여가 된다는 순기능도 있다. 규제만 하기보다는 교육이나 의료, 운동에 접목해 활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게임 정책에 필요한 것은 뜨겁다고 찬물 끼얹으려는 소방수가 아니라 이 열기로 화덕을 덥혀 새 요리를 만들어낼 명품 요리사의 손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