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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없는 가상재화가 컨버전스 시대의 주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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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23면

이석채 KT 회장

지금은 컨버전스(convergence·융합) 시대입니다. 이 융합의 시대엔 공존 공생하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호를 개방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가치 사슬에 참여시켜야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참여자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 같지만 이들과 진정한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나도 살 수 있습니다. 컨버전스는 이렇게 동반성장과 상생의 철학과도 통합니다.

[CEO 일요 경영산책] 이석채 KT 회장 ②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제3의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한 스마트 혁명도 그 근저에 유·무선 통신 통합 네트워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 농가에서 재배하는 파프리카의 수출 사례를 보죠. 국산 파프리카는 일본에 많이 수출됩니다. 과거엔 일본 수입업자들이 파프리카가 청정 재배되고 있는지 점검하러 불시에 방한해 농장을 찾았습니다. 지금 이 일본 업자들은 도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든 긴자 거리를 걸어다닐 때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스마트 기기로 온실의 재배 환경을 살펴보고 경작농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상생·공존 철학 담긴 융합시대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 비결도 바로 정보기술(IT)과의 융합입니다. 국내 조선사들은 고객이 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그 데이터를 CAD(computer-aided design·컴퓨터 설계)·CAM(computer-aided manufacturing·컴퓨터 제조) 시스템을 이용해 컴퓨터에 내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고객이 이런 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즉석에서 배를 영상으로 그려 보이고 제작비 견적을 내 주죠. 설계 변경을 요구하면 역시 즉석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보고 비용을 뽑아줍니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80% 정도만 이런 식으로 전산화를 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객이 배를 주문하면 표준 설계를 제시하고, 변경을 요구하면 엔지니어가 작업을 해 한 달 뒤 제작비용을 제시하겠다고 한답니다. 이러니 고객들이 한국 업체를 선호할 수밖에 없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동영상 조회 6억 건을 돌파해 역대 조회 수 2위를 기록한 것도 스마트 혁명 덕 아닙니까. 세종시 출범으로 정부가 둘로 쪼개졌다고 하지만 스마트 워킹의 발상을 활용하면 교통 문제 등의 비능률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KT는 과거 음성을 파는 회사였습니다. 인터넷 시대로 넘어온 후엔 통신서비스 약정을 맺고 사용료를 받는 게 사실상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전부였죠. 그 후 데이터 통신 시대의 개막을 겨냥해 우리가 유·무선을 통합했어요. KT와 KTF의 2009년 합병이죠. 바로 컨버전스입니다. 그 덕에 2009년 말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처음 도입할 때 데이터 요금을 88%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무선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렸고요. 그 전엔 무선 인터넷 요금이 저도 마음껏 못 쓸 만큼 비쌌어요. 그래도 요금을 못 내린 건 수입이 줄어드는 건 차치하고라도 통신망이 과부하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무선 통합으로 강력한 유선과 와이파이·와이브로를 확보해 요금을 떨어뜨린 겁니다. 무선만 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죠. 그러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데이터가 폭증했습니다. 다시 과부하가 걸렸고 그래서 이번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클라우딩 커뮤니케이션 센터(CCC)’를 열었습니다. CCC의 가상화 기술 덕에 제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 WARP는 세계 최고의 상용 속도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 일련의 과정을 관류하는 게 컨버전스입니다.

지금은 우리 망을 통해 방송, 미디어 콘텐트, 학습용 자료, 보안 솔루션, 그 밖에 다양한 기업용 솔루션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바로 콘텐트·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 등의 ‘가상재화(virtual goods)’죠. IPTV·유튜브·앱스토어 등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고 스마트 기기로 소비되는 디지털 재화입니다. 이들 가상재화의 출현은 스마트 혁명의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상재화야말로 스마트 혁명의 적자(嫡子)죠.

유형의 재화(physical goods)는 시·공간의 제약이 따르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무역장벽을 넘기 어렵지만 모바일 게임 같은 가상재화는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 시장에 순식간에 공급되죠. 24시간 유통에, 직접 요금을 매길 수(billing)도 있습니다. 이 가상재화 세계 시장은 2015년 1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5년 만에 20배로 급성장하는 셈이죠.

이 시장을 어떻게 뚫을 건가. 국내 모바일 게임 업체 컴투스는 과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외국에 지사를 개설하고 주재원이 해당국의 통신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지난 10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죠. 아이폰 국내 도입 후 앱스토어에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올린 이 회사는 지난해 176억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습니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컨버전스를 통해 활짝 열린 겁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KT의 네트워크 기술은 CCC·LTE로 계속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이런 기술들은 세계 최첨단 수준입니다. KT가 첨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이 무대에서 KT는 하나의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이 무대 위에서 뛰어놀 겁니다. 싸이도, 카카오톡도 이런 플레이어들이죠.

‘네트워크 이코노미’로 청년 실업 해결
전력을 쓰지 않는 세상을 떠올리기 힘들듯이 앞으로 네트워크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겁니다. 장차 이 ‘네트워크 이코노미’ 시대에 저는 가상재화 산업이 한국의 성장 동력이 될 거로 기대합니다.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낼 거예요. 무엇보다 이들 일자리는 취업뿐 아니라 창업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젊은 세대가 도전의식만 있으면 스스로를 고용할 수 있어요. 과거의 창업과 달리 진입비용도 얼마 들지 않아요. 컴퓨터든 서버든 스스로 마련하지 않고도 빌려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이 적게 드니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타격이 작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스마트 혁명을 가장 잘 이끌 걸로 봅니다. 스마트 혁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일한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스마트 유전자가 있다고 느낍니다.

이제 기업은 컨버전스를 대전제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일례로 홈플러스가 쇼핑과 외식·엔터테인먼트 등의 생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 것도 컨버전스 혁신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서점 아마존도 일종의 컨버전스죠. 앞으로도 오프라인에서 소비되는 것들 중 다수가 온라인으로 옮겨갈 겁니다. 그게 어느 분야가 될지는 연구와 개척의 대상이죠. 미국에서 철도 붐이 일어난 건 남북전쟁 후입니다. 당시 철도를 놓은 사람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여행객을 실어나르려 했지만 수요가 없어 다 망했습니다. 이 서부행 철도의 주고객은 뜻밖에도 텍사스에서 태어난 소, 뉴욕에서 실은 석유였습니다. 철도는 그 후 산업 발전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철도 문화도 꽃을 피웠죠. 이처럼 융합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떻든 기업으로서는 컨버전스라는 이 ‘오래된 미래’의 트렌드에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맞는지, 수정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대안은 무엇인지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컨버전스가 초래할 상쇄(trade-off) 효과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합니다. 컨버전스가 활발해지면 상당 기간 지속될 걸로 기대한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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