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퍼즐같은 스릴러 '메멘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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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 는 은근히 뭔가 특별한 영화를 바라는 관객들에게 금상첨화인 영화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영화를 조각 내 다시 편집한 것 같은 구성에 긴박감을 자아내는 스릴러의 묘미를 가미한 이 영화는 처음엔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영화의 성격을 읽어내는 순간, 누구든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 선보여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선댄스.도빌.시체스 카탈로니아 영화제 등을 돌며 각본상.관객상 등을 받았고

세계적인 영화 정보사이트 IMDB(http://www.imdb.com)에선 네티즌들로부터 평점 8.9(10점 만점) 를 받아 '와호장룡' '식스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걸작들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올 3월 미국에선 단 11개 극장에서 개봉했다가 10주 후에 스크린 수를 5백여개로 늘리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전미 박스오피스 8위까지 올랐다.

전직 보험수사관이었던 레너드(가이 피어스) 는 뭣이든 10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 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 그리고 범인의 이름이 존 G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기억도 메모를 통한 것이다. 범인을 추적하다 중요한 단서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에 레너드는 메모에 집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메모의 기억마저 헷갈리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대신 10분 이상의 기억력을 가진 관객들은 그 때부터 레너드가 만들어온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다.

한정된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과 관객의 심리 상태를 비슷한 상황에 놓기 위해 영화의 시간을 거꾸로 전개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는 진실들을 알아가자면 마치 영화를 본다기보다 퍼즐 게임을 즐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LA 컨피덴셜' 에서 처세술에 능한 엑슬리 경사로 나왔던 가이 피어스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가 됐고, 이 영화가 두번째 연출작인 서른 살의 놀란 감독은 지금 알 파치노.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불면증' (Insomnia) 이란 영화를 찍고 있다.

매력적인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보통 영화를 보듯 느긋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첫 단락의 첫 장면이 다음 단락에서 마지막 장면이 되고 두번째 단락의 첫 장면이 그 다음 단락에서는 다시 마지막 장면이 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씩 단서가 잡히는 만큼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며 장면을 잘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두.세번은 봐야 가닥이 잡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 실제로 한 극장에선 두번 보러 오는 관객에게 입장료를 1천원 할인해줄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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